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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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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09-12 | 조회조회수 : 3,4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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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수상하다. 8월 말까지 비와 폭염과 습도가 번갈아가며 괴롭히더니 9월 첫 날, 아침 기온이 스산하다. 에어컨이나 선풍기와 같은 시원한 바람이 없으면 잠을 못 청했는데, 정말 하루 사이에 언제 더웠었나? 싶을 정도다. 새벽녘엔 찬 기운 때문에 걷어차던 이불도 끌어와 덮을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는 9월 말까지 더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여름옷을 정리하고 가을옷을 꺼내입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따뜻한 겨울을 맞이했다. 반면 올해는 요즘같은 날씨같으면 가을은 고사하고 바로 겨울을 맞이할 판이다. 이래나저래나 가을은 우리들의 기억 저 너머에 자리잡은 전설속의 계절이 될 것만 같다. 앞으로는 더운 여름, 비많은 여름, 습한 여름과 따뜻한 혹은 추운 겨울로 사계절의 아름다운 금수강산 노래가 사라질 수 있겠다.

50일 이상 비가 내렸고, 8월 말과 9월 초에는 태풍이 지나갔다. 90일의 여름 중 거의 3분의 2가 비와 구름으로 우중충한 날이었다. 이런 기후로 올해 농사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했다. 비오는 날이 너무 많아 농사를 짓는 일도 더뎠다. 고추는 물먹은 채로 떨어졌다. 기름을 짜러 방앗간에 갔다가 고추를 빻으러 온 이웃 동네 이장님을 만났다. 두 봉지에 담아온 고추는 하나는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희멀건했다. 이쪽에서 흔히들 희나리라 부르는 웬만하면 먹지 않는 품질이 떨어진 고추였다. 그런데 그것 또한 빻아 달라고 내보였다. 이유는 기나긴 장마 속에 매달린 고추가 없기에 그런 질 떨어지는 것이라도 빻아 먹겠다는 심정이었다. 고추로 음성만큼 유명한 괴산의 친환경 농가는 고추농사는 물건너 갔다고 여기고 상한 마음을 일찍 접고 고추를 뽑아 김장 배추를 심었다고 한다. 많은 농가들이 수상한 계절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가을과 겨울 작물을 심는 것을 보면 농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남일이 아니다. 나도 내 스스로 양아치 농부라고 자처했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조금씩 심었던 것들이 있었다. 잘 자라던 푸성귀들은 비와 함께 녹아내렸다. 콩은 잎만 무성하지 꼬투리는 아직 납작하다. 깻잎은 가을까지 무성해야 하는데 자라다 말았다. 본래는 내 키를 넘어야 하는데 올해는 허리에도 못 올라왔다. 김장 김치에 조금이나마 보태려 심었던 고추는 한두개 열리고 물먹은 고추로 상해버렸다. 그나마 괜찮다 싶은 것은 건졌다 싶었지만 말리고 나니 누렇게 떴다. 토마토, 오이, 호박 등은 포기한 지 오래 전이다.

이런 와중에 그야말로 풀은 내 키를 넘었다. 지난주에는 간만에 볕도 나고 바람도 선선하여 낫과 예초기를 들어 집 주위와 밭 주위 그리고 작물 주위를 마구 정리했다. 처서가 지났기 때문일까? 풀은 기운을 잃긴 했다. 더욱이 풀도 물을 많이 먹은지라 자라는 힘이 예년만 못하긴 했다. 땅 자체가 물을 잔뜩 먹고 있는 상태라 적당한 수분이면 모를까 근 50일 이상의 물 앞에서는 풀도 힘을 쓸 수 없는 법이었다. 풀도 이 정도니 사람 편에서는 좋은 일이었겠지만 잘 자라던 알곡이 한순간에 쭉정이가 될 수 있기에 수상한 계절은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풀이건 작물이건 자연 앞에 고개를 숙였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엄청난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는 뉴스는 이미 오래 전에 들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펭귄과 백곰들과 그 외 여러 생명체들의 서식지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동시에 개체수 또한 사라진다고 한다. 그곳뿐이던가.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아마존은 하루에도 수백 곳에서 자연 산불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많은 동물과 곤충들이 살 곳을 잃었고, 원주민들도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어디는 폭우로, 어디는 폭설로, 어디는 불볕 더위로, 어디는 추위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후를 맞는다고 한다. 지구 곳곳이 이런저런 모양의 물과 불로 난리가 나고 있다. 이번의 우리나라에 내린 최장 기간 비도 지구의 몸살 속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도 그럴 것이고, 이 외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예상하지 못하는 기후 환경도 지구의 신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될 것이다.

수상한 계절을 맞이하며 집 주위의 생명체들이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지는 것을 본다. 움직이는 생명들은 후손을 남기는 일에 열심이다. 예년보다 다른 계절을 감지한 풀, 나무, 꽃, 새, 곤충, 작물 등은 성장세를 멈추고 씨를 맺는다. 가을이 깊어지려면 멀었는데 말이다. 올해는 거미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빗자루로 걷어내면 그 즉시 새로운 거미줄이 쳐졌다. 짝짓기의 때도 서로 다를 수 있는데 활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태풍이 불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나비가 날개짓을 한다는 것처럼 기상변화에 무딘 나와는 다르게 생명체들은 아주 작은 것들조차 수상한 계절의 변화에 몸을 웅크린다.

반면에 사람만이 여전히 뻣뻣이 목에 힘을 주고 있는 듯 보인다. 옛 사람들은, 농경사회에서는 하늘의 변화에 민감했으나, 지금은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하늘보다는 세상의 변화에 더 민감한 듯 보인다. 지구가 몸살을 앓든, 코로나가 번지든 말든, 나의 욕망만 이루면 ‘따봉’을 외치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수상한 계절과 수상한 세상이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아무개의 발언으로 어수선한 이 때 예언서를 펼쳤다. 바벨 시대에도, 사사기 시대에도, 히스기야 때도, 예수님 때도 그리고 예수님 이후에도 수상한 세상, 수상한 계절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더하여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하셨다.

수상한 계절! 동‧식물은 수상한 계절 앞에 몸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농부는 수상한 계절 앞에 겸손해진다. 수상한 계절을 맞으며 나도 마음이 저절로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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