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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어린 왕자』 1. 하늘을 나는 작가, 사막에 착륙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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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4-28 | 조회조회수 :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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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연재를 시작합니다. 임 교수는 선교신학자이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으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는 프랑스 문학사의 흐름과 생텍쥐페리의 삶, 그리고 『어린 왕자』의 깊은 상징을 복음주의 신학 및 선교학적 사유와 엮어낸 11편의 칼럼으로 구성됩니다. 문학을 단순한 기독교적 비유로 한정 짓지 않고, 인간 존재와 사랑, 소명과 죽음, 그리고 증언의 문제를 신학적 통찰로 풀어낼 임윤택 교수의 연재에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나는 “어린 왕자”를 사랑한다. 눈망울이 깊고 맑은 소녀가 나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책이기 때문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책상 위에서만 문장을 길어 올린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의 바람과 엔진의 진동, 별빛 아래 사막의 침묵을 몸으로 통과한 사람이었다. 우편 비행사였던 그는 프랑스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잇는 항로 위에서 편지를 실어 날랐다. 그 편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다림, 사랑, 소식, 생존의 증언이었다. 생텍쥐페리에게 비행은 직업이었지만, 동시에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숭고한 사명이었다.


비행사의 삶을  읽는 두 개의 상징은 비행과 사막이다. 비행은 상승의 욕망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보이지 않는 길을 여는 도전이다. 밤하늘을 가르는 조종사는 늘 추락의 실존을 안고 날아간다. 그러나 바로 그 위험 때문에 비행은 소명의 은유가 된다. 자기 삶의 부름 앞에 선 사람은 모두 안전을 보장받고 출발하지 않는다. 그는 흔들리는 계기판과 어둠, 불확실한 기상 속에서도 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


사막은 학교다. 1935년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한 경험은 그에게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직시하게 했다. 사막은 인간에게서 장식과 허영을 벗겨 낸다. 물 한 모금, 동료의 손길, 별 하나의 방향이 생명의 의미가 된다. 『어린 왕자』의 사막이 그토록 맑고 아픈 것은, 그것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착륙한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


직업은 생계가 아니다. 오늘 우리는 직업을 흔히 생계의 도구나 성공의 계단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삶은 묻는다. 당신의 일은 누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가?  당신이 나르는 것은 단지 실적과 이력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살리는 기쁜 소식인가?  그는 전쟁 조종사로 다시 하늘에 올랐고, 1944년 정찰 비행 중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실종은 한 작가의 끝이 아니라, 소명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삶의 마지막 비행이었다.


나는 길을 모른다. 기독교 신앙은 소명을 안전한 길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고, 바울은 복음을 위해 바다와 감옥과 매임을 경험했다. 예수님만이 길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지, “편안히 잘 살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의 사랑을 운반하는 항로가 될 때, 이민자의 평범한 노동도 증언이 된다. 오늘 내가 선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생명의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하늘을 나는 영혼의 작은 순종이다. 나는 오늘도 하늘을 난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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