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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변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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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09-17 | 조회조회수 : 6,6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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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해서 전혀 쓸데없는 푸념 하나 하고 가야겠다.

변승우는 신사도 운동으로 이단판정을 받았다.

홍정길 목사의 동생 홍정식도 신사도 운동의 리더격이다.

 

신사도 운동이란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이

회복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움직임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성경의 완전성을 허물기 때문이다.

 

정통신학은 계시의 종결성을 말한다.

성경 66권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완전히 종결되었다.

수많은 외경과 위경들을 배제하고 정경 66권을 결정한 근거는

선지자의 영감과 사도성이다.

 

구약은 선지자의 영감을 기준으로 결정되었고

신약은 사도가 썼거나 인정한 문서들이 정경으로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사도와 선지자 직이 오늘날 회복되었다면

성경은 언제든지 가감되어야 한다.

 

실제로 변승우는 바울이 서신서를 쓸 때 영감하던 천사가

자신이 책을 쓸 때도 영감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울 서신과 변승우가 쓴 글의 내용이 상반된다.

천사가 2천년 만에 마음을 바꾼 모양이다.

 

신사도 운동은 마지막 때에 기독교의 뿌리인 성경을

훼방하고 왜곡하기 위해 역사하는 마귀의 마지막 발악이다.

그래서 신사도 운동은 치명적이다.

 

그런 이단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1:8,9).

그런 변승우를 불쌍하다고 이 글의 제목을 달았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극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전모씨는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전모씨는 극악무도한 싸이코 패스적 기질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변승우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억울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소위 대형교회 목사’(?)라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직접적인 계시를 받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여의도에서는 설교시간마다 계시가 임한다.

그것을 통변해 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천편일률이다.

그들의 하나님은 그 말밖에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단이 아니다.

 

또 예장 합동 측에 속한 부산의 대형교회 원로는

자신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한다.

그것을 듣고 있던 신학교 교수가 당황해서

심령으로 듣는 것이라고 교정을 해주었더니

버럭 소리를 지르며 육신의 귀로, 물리적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궁금해서 기독교 TV를 통해

이 사람의 설교를 듣다가 채널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들은 내용은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위해

엄청난 복을 예비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이다.

어떻게 하면? 율법을 잘 지키면.’

그 소리에 거기 모인 밤새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한다.


여의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부산의 존경받는 원로가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천박한 이해는 한국 기독교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이 사람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다.

거기에 모이는 밤새 교인들이나 지역 사회의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기독교의 목표와 기준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물론 도덕적, 윤리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다윗이 그랬다.

기독교의 사활을 결정짓는 기준은

복음의 순수성이다.

복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이 어떻든 그것은

지극히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아무튼 이 사람도 이단이 아니다.

 

그래서 변승우가 할 말이 있는 것이다.

저 사람들도 계시를 받지 않느냐고?

저 사람들하고 자신의 차이는

바울을 영감한 천사가 자신과 함께 있다고 주장한 것밖에는 없다고.

변승우 편에서는 얼마든지 따져 물을 수 있다.

   

도대체 신사도 운동을 이단으로 판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것인가?
신학의 기본 중의 기본인 계시론이 기준이다.

 

저 사람들은 변승우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자신이 받는 계시와 변승우의 계시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기독교의 초월을 배제한 율법에 대한 천박한 이해,

여호와를 아세라의 남편으로 만드는 우상 숭배적 작태 등등을 생각하면

변승우는 그야말로 병아리, 아니 계란이다.

 

여의도나 부산이나 이런 자들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국교회를 과연 교회라 할 수 있을까?

사자 명예훼손이니 뭐니 할까봐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지만

고 옥한흠도 안성 수양관에서 신사도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최자로서 적극 가담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신의 교회 소유 수양관에서

그런 세미나를 열었다는 것은 그만큼 신학적 소양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의도에 가서 성령 받게 해달라고 안수를 받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내가 제자 훈련 유감이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말도 안 되는 비본질적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고 하용조는 긍정의 힘으로 한국교회를 초토화시키지 않았겠는가?

전광훈이 한기총 대표를 하는 상황에서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고 손가락만 피곤하다.

 

나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유사 유대교임을 논술했다.

그래서 서로 총질을 하며 이단 어쩌구 하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 당시 산헤드린에서 행한 작태와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된다.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이단이고 정통이고 구별이 전혀 의미가 없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서 정죄한 이단이 더 죄가 있겠는가?

예수님을 못 박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더 죄가 있겠는가?

 

변승우는 불쌍하게도 이런 이단 놀음에 걸려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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