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사색] 함께 살아갈 때 평화가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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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도 추수감사절 마을 풍경은 조용하기만 하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흩어져 있던 가정식구들이 모이고, 또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함께 감사절 만찬을 하느라, 주택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파킹랏에는 차량이 몇 대씩은 있었는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거리는 평상시와 같이 조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리 삭막하지는 않다. 감사절을 맞아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식료품과 음식을 나누어 주는 행사는 전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코로나 19로 생활이 어려워진 이웃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던 것이다. 주변에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이웃들에게 적은 것이지만 함께 사랑이나 정을 나누는 일들을 한 것이다.
홈리스 피플들에 다량의 음식을 제공한 그룹이 있는가 하면, 한국교회나 미국교회 할 것 없이 교회들도 감사절 식료품 박스를 준비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감사절 식품으로 여러 종류의 식료품 캔과, 햄, 그리고 냉동고에 얼린 건실한 통닭을 나누어 주고, 교회 담임목사가 받아가는 사람들에게 축복기도까지 해주었다. 내가 사는 곳의 작은 미국교회도 열심으로 이런 나눔 행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올해 이러한 훈훈한 모습들이 주변 여러 곳 에서 목격되는 상황이었다.
어찌 먹고 마시는 일에만 도움이 있을 뿐이랴. 이곳 한인운영의 신학대학교도 코로나 19로 인해 실직하고, 수입도 줄어든 한인사회 가정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학자금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신학도들을 돕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즉 교육은 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덕의 정신으로 하는 것임을 잘 말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넉넉하고, 풍성할 때 “나 이렇게 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사회에 무엇인가 공헌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작은 것을 함께 나누는 정신이 더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작은 일에서도 사람 살아가는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건 사람 살만한 세상임을 느끼게 하는 선행들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편안하게 잘 사는 시대다. 그렇게 돈이 많은 시대 속에 살아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도 한가지겠지만, 부를 이루어 주체 못 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루하루 식생활을 고민하는 사람들, 실제로 끼니를 거르고 있는 사람도 많다. 앞으로 인류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러한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규범을 마련하여 실시하기도 했다. 즉, 10계명 헌법 아래 부칙에는 가난한 사람들,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함께 살아가는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농작물이나, 또는 포도 수확 철, 한쪽 구석의 것은 가난한 이웃이나 나그네를 위하여 추수하지 말라 하는 내용이 성경에 있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땅에 떨어진 보리나 밀 이삭도 줍지 말라 하고 있다. 또, 옷을 전당 잡았거든 저녁이 되면 돌려주라는 말씀도 있다.
추워서 잠을 못 자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없는 자들에 대한 살아갈 권리를 존중하여 그렇게 인간적 배려사상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1세기 교회들 역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교회들은 재정적으로 약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전담기구로써 집사제도를 만들었다. 7명을 두었는데, 그 집사들은 교회 내 식료품이나 생활물자가 필요한 성도들이 있어 그들을 전적으로 돌보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제 앞으로 성탄절을 맞게 된다.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을 돕는 사랑의 모금 운동이 펼쳐진다. 이때도 추수 감사절 때처럼 가난하여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 대해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들도 하나님 창조의 일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알고 가진 자들이 더 큰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돕고 베푸는 것으로서 함께 살아갈 때, 그때가 평화의 때다.
애틀랜타 중앙일보 장석민 목사 / 빛과 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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