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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헌금과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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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0-02 | 조회조회수 : 10,9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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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아멘] 잃어버린 헌금의 기쁨, '선물의 공동체' 회복하려면


"아주라, 아주라, 아주라!!"

16연패, 13연패, 15연패, 18연패(vs KIA) 2002~2003년의 롯데자이언츠는 연패가 습관이었다. (롯데 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나의 청소년기 롯데는 그런 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 팬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뭇 다른 롯데를 기억하는 것 같다. '아주라'다. '아주라'는 롯데 홈경기장인 사직구장의 문화다. "아(아이에게) (공을)주라." 어른들이 파울볼을 잡았을 때, 주변의 어린이에게 공을 선물로 주는 훈훈한 풍습이다. 선물을 받은 아이는 물론, 호의로 공을 주는 어른,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이 함께 즐거워했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만 들리지는 않는다.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주라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아주라가 변질했다는 불편한 이야기도 듣는다. 아주라가 선물 문화의 이름이 아니라, "내놔라" 하는 강요와 강탈의 집단적 구호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반대하여 타 구단에서는 공을 주운 임자를 보호하는 "니해라"(네가 가져라)는 구호도 외쳐진다고 한다. 누구를 탓하는 것을 떠나, '아주라'와 '니해라' 사이에서 주는 것이든 받는 것이든 선물의 기쁨을 누군가는 잃어버린 안타까운 이야기인 듯하다

"오늘 행사 중 가장 기쁜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바로 헌금하는 시간입니다."

1년 전, 개천절에 열린 광화문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가 헌금함을 돌리며 한 말이다. 전 목사의 발언은 개신교 안팎에서 몹시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전 목사 행보의 비판뿐 아니라, 온갖 명목으로 헌금을 요구하는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맞물린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는 무수한 제목의 헌금 봉투가 있다.

어리고 순진했던 시절의 나는, '헌금'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기에, 모든 헌금은 불태워져 하나님께 바쳐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은혜를 말해도 교회 운영에는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직원들의 사례(급여), 교회 시설 유지 관리, 공동체 돌봄, 예배, 선교 사업을 위해 헌금이 쓰인다.

한국교회의 지출 중 가장 많은 금액은 부동산과 관련되어 있다. 2000년대에 기독교인이 된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예배당를 건축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오던 황금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크고 높은 건축물을 목회 성공의 척도로 여기는 풍토 탓에 많은 교회가 무리해서 건축하고 공간을 마련했다. 작은 상가 교회들은 작은 대로 임대료에 시달린다.

이러한 부담 속에서 목회자는 헌금을 부담스럽게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대로, 헌금은 사용처가 불분명하고, 특정 사람의 주머니로 향한다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헌금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거부감이 더해 간다. 또한 이러한 문제와는 별개로, 마음은 있어도 개개인과 사회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헌금하는 손을 머뭇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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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온갖 거부감과 어려움에도, 헌금은 전 목사 말대로 예배 중 가장 기쁜 시간이다. 헌금은 예배의 절정인 성찬 순서에 포함된다. 성찬은 평화의 인사와 봉헌으로 시작한다. 오늘날 예식화된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사목자나 봉사자의 수고로 미리 준비되지만, 예식화 이전 그리스도교의 생활이었던 식탁은 평화의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가져와 나누는 헌물로 마련되었다. 그 나눔이 식탁 위에 올라간다. 거기엔 우리 삶이 담겨 있다.

우리가 드린 평범한 물질이 주님의 몸과 피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그곳에 함께 드려 주님의 몸으로 변화된다. 헌물 나눔이기에 음식뿐 아니라, 이웃을 위한 옷가지와 생필품, 구제에 필요한 돈으로도 드려질 수 있었다. 봉헌은 값없이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 이들이, 자신을 선물로 값없이 하나님께, 그리고 이웃에게 내어놓음을 통해 하나님나라 질서를 현실에 구현해 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하나님나라가 모습을 드러내는, 기쁨으로 가득한 '나눔의 잔치'다.

봉헌이 참으로 기쁜 시간으로 만끽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오늘의 경제 질서가 우리의 상상력을 발목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와 축적의 방식으로 헌금이 운용되고 있다. 헌금인지 투기인지 헷갈리는 방식으로 헌금을 종용하기도 한다. 체면치레와 강압적인 분위기도 있다. 이런 분위기를 비판하면서 헌금을 강조하지 않는 쿨한 교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교회들 역시도 소비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소비적 태도에 빠질 위험에서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초대교회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면서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한 모습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물들어 아무런 대안적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에 참고할 만한 상상력을 준다. 우리는 대가와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채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법을 물질의 나눔을 통해서 배운다.

봉헌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시간이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거저 줄 수 있는 사랑의 존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순간이다. 봉헌은 내 어릴 적 생각처럼, 하나님께 태워서 올려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돌아야 한다. 소비와 탐욕의 창고에 쌓아 둘 게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흐름처럼 계속 흘러야 한다.

야구장 내야석에서 주운 야구공 하나를 어린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며 선물의 공간으로 만들어준 아름다움 나눔이 '아주라'와 '니해라'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거저 받은 은혜를 나누는 신앙인의 헌금이 만들어 내던 '선물의 공동체'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헌금을 통해 값없이 내어 주는 법을 다시 배운다. 야구공 하나가 우리에게 이미 알려 주었듯, 많든 적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채 내 존재를 이웃에게 그저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니, 참 기쁜 일이 왜 아닐까? 누가 우리에게서 이 기쁨을 빼앗고 있는 걸까?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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