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에피소드 2 - 내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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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두뇌의 병으로서 유전 인자를 통해 가족에게 전해 내려온다. 나와 은하에게 유전인자를 전해준 장본인이 바로 나의 아버지라고 지목한다.
일제 시대에 북한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중간에 돌아오신 후, 25세 때 당시 17세인 어머니와 결혼 했다. 그 다음 해에 내가 태어났다. 그는 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했는데 어느 날, 동료 교사들과 대화 중 공산주의 비판을 소리 높여 외쳤다. 충동적이었던 본인 행동의 위험을 직감하고 그날 밤, 몰래 공산당들을 피해서 서울로 홀로 떠났다. 월남한 후 북한에 남아 있는 엄마와 나를 데리러 올 생각도 안 한 채, 서울에서 가수가 되기 위해 기타 공부를 했었노라고 어머니한테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외할머니가 막내딸인 엄마와 한 살 된 나를 데리고 이미 위험해진 삼팔선을 밤새 넘어 남한으로 피난을 왔다.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일요일이었던 그 날 아침, 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전매청 사택에 이런 방송이 나왔다. 남자 직원들은 이미 배로 피신을 했으니, 아내들은 자녀들과 함께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서 피난 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앞세우고, 동생을 업고, 정처 없이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위험한 순간에 한 번도 어머니와 자식들을 지킨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했고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켰다. 9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것은 두 명의 자녀와 몇 명의 손자들에게 물려주신 ADHD 유전자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6.25 사변 중에 외아들을 잃으셨고, 둘째 딸을 이북에 두신 채 남한으로 피난 오셨다. 그 딸이 자신의 시부모를 지켜야 한다며 함께 내려오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세 자녀 중 유일하게 곁에 남은 것은 막내 딸인 나의 엄마였다. 할머니는 “나는 빨리 죽어야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것이 우울증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집착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먼훗날이다. 할머니는 내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세 아이들을 낳은 뒤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몇 년 간 우울증이 더욱 심해지셔서 자신을 돌봐드리던 손주 며느리와도 문제가 많이 생겼고, 그 때문에 나의 어머니는 상심이 크셨다. 6.25 전쟁은 민족의 큰 상처였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모두가 할머니처럼 우울증을 앓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심각한 불안 증세나, 강박 증세를 앓을 수도 있고, 외상후 스트레스 증세(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고생할 수도 있다. 나는 할머니의 유전인자를 통해서 우울장애가 나에게도 올 수 있으리라 여겼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다음번에 계속>
- 수잔 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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