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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되잡는 것이 언제나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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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0-28 | 조회조회수 : 3,6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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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목사(아틀란타한인교회)



언제부터인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표절(Plagiarism)”, “패러디”(Parody) 그리고 “오마주”(homage)같은 단어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표절은 사회적인 큰 문제로 부상한지 오래입니다. “표절”은 다른 사람들이 쓴 학술 논문이나 문학 작품 또는 영화 대본이나 음악 작품 등을 원 저자의 허락 없이 내용의 일부나 전부를 함부로 베껴 사용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대부분 그냥 지나쳤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지적 소유권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무사 통과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이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지적 능력이나 재능을 통해서 만들어낸 창작물들을 일반 “상품”이나 “재산”과 똑같이 취급하려는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가로채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중 매체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온라인(On-line) 네트워크 시스템이 지구를 하나로 묶으면서 조금만 표절의 냄새가 나도 쉽게 찾아내어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표절, 패러디, 그리고 오마주는 서로 비슷해서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패러디”는 원작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익살스럽게 내용을 재구성한 것인데, 원작을 그대로 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행히 패러디는 그 의도가 워낙 분명해서 원작을 그대로 모방해도 크게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원작과 똑같으면 똑같을수록 박수를 받기도 합니다. 원작을 그대로 모방해서 비아냥거리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표절”과 “오마주”는 문제가 다릅니다. 이 둘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표절은 명백히 도둑질입니다. 오마주도 남의 작품을 자신의 산물인 것처럼 도용하는 점에 있어서는 표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마주”는 “감사, 존경, 찬사”를 뜻하는 프랑스어입니다. 그 말대로 자기가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 일부를 자신의 작품 속에 끼워 넣는 행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마주를 한 경우에는 반드시 알림글을 적어 넣어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아무개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분의 작품을 오마주 했습니다.” 이 한 줄이 표절과 오마주를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토론과 반론들이 있습니다. “패러디도 결국에는 풍자를 가장해서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오마주도 ‘존경해서 사용했다’는 이유를 들이대지만, 실제로 남의 것을 날로 먹는다는 점에 있어서는 표절과 똑같은 행위가 아니냐?” 하고 반박을 합니다. 어떤 때는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남의 것을 베낀 “표절”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신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법적으로 “이것이 표절이냐?, 오마주냐?, 아니면 그냥 패러디냐?” 하는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갑론을박(甲論乙駁)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법적으로 문제가 야기되자, 그 때에서야 “존경하는 마음으로 오마주를 한 것”이라고 변명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작가의 어떤 면이 너무 못마땅해서 패러디한 것인데 뭐가 문제냐?”하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부터 꼬리를 내리고, “의도적으로 카피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만 “인용 부호”(quotation mark)를 다는 것을 잊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미리 알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그나마 법적으로 처벌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를 가장 잘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자신뿐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아무리 숨기려고 노력해도 결국에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한 집에서 나사로와 함께 식사를 하실 때, 마리아라는 한 여인이 다가와서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붙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는 장면이 나옵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건강한 젊은 노동자가 일년 동안 꼬박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그 귀한 것을 잠시 동안의 기쁨을 위해 가차없이 쏟아버린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몰상식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금방 간파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사랑”입니다. 


이 장면을 본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가 그녀의 치기어린 행동을 나무랍니다. “왜 그 비싼 것을 허비하느냐?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대단히 합리적인 신앙의 소유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돈”입니다. 그는 돈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공동체의 돈을 관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남 모르게 돈 장난을 많이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여인의 향유 값도 떼어 먹고 싶었나 봅니다. 그의 속 마음을 꿰뜷어 보신 예수님께서 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도적놈이다.”  예수님은 유다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탐욕”을 보셨던 것입니다. 


나사로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일들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 보던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이스라엘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율법과 전통을 보존하는 것뿐입니다. 그의 말과 행동 속에는 권위가 있고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모습만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오직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나사로까지 모두 살해할 생각을 합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죽음”만 담겨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향유를 부은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며 칭찬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차려입은 거지가 잘 얻어 먹는다”는 말까지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속 사람을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보이는 것보다 마음을 더 신경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몇 년 전에 선배 목사님 중의 한 분이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곧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글이라고 주장했지만, 연회에서 누군가가 내용이 거의 같은 책을 증거물로 제시하자 입을 다물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 표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용이 거의 똑같았습니다. 그러자 나중에는 저자를 존경하기 때문에 오마주를 한 것이라고 반론을 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라도 책을 내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본인이 잘 알 것입니다. “권력”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위치까지 올라가려면 책을 출간하는 경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본질은 항상 눈 앞에 있지 않고,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표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되잡는 것이 언제나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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