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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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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1-05 | 조회조회수 : 3,5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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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 깊은 생각을 주는 동화 작가 “정채봉” 선생이 쓴 “거기 누가 있는가”에 보면 두 “물풀”이 등장합니다. 물망초와 수련입니다. 둘이 한 연못에 살고 있었습니다. 동쪽 연못 귀퉁이에는 물망초가 살고 있었고, 서쪽 귀퉁이에는 수련이 살고 있었습니다. 같은 연못이었는데도 두 풀의 살아가는 모습은 천양지판이었습니다.   


동쪽에 살던 물망초는 항상 불만이 많았습니다. 허구한 날 물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스러워 했습니다.  물방개가 스쳐 지나가는 것도 짜증스러웠습니다. 산그리메가 지나가는 것도 거슬렸습니다. 모든 것이 다 싫었습니다. 그러나 서쪽의 수련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요? 수련은 더러운 흙이 아니라, 청결한 물 속에 산다는 것부터 감사했습니다. 어쩌다 물잠자리가 잠시 날아들어도 반겨 맞아주었습니다. 흰구름 깃이 물 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


자연히 물망초가 사는 연못의 동쪽에는 어떤 곤충이나 식물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물파래만 시꺼멓게 가득 자리잡고 말았습니다. 물망초는 꽃도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물파래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점점 힘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쪽의 수련은 파란 물 위에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새순도 여기저기 솟아났습니다. 나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붉은 노을도 아름답게 수련이 있는 곳을 물들여 주었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주변에 가득 찼습니다. 한 연못에 살아가는데 두 풀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연못에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광경인데, 그것을 보면서 아름다운 동화로 표현해 낼 수 있었던 정채봉 작가의 심미안이 경의롭습니다. 한 페이지의 짧은 글이지만 오래 동안 머리 속에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살아내는 존재가 더 중요함을 보여주는 동화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인생이 전개됩니다. 물론, 주어진 환경에 무조건 수능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운명처럼 주어진 삶의 모습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내 앞에 펼쳐진 환경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정답”(正答)만 찾는 사람은 인생을 멋지게 펼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해답(解答)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더 풍성하게 발전시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한국에 “말죽거리”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름만큼이나 촌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이 살던 대표적인 곳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남 붐(boom)이 불면서 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야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 시나브로 시간이 지나더니, 어느 날부터인지 그 지역의 이름이 “개포동”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난했던 시절만 기억하고 “개포동”이라는 이름을 “개도 포기한 동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곳은 “개도 포텐샤(Potentia)를 타고 다니는 동네”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본질이 언제나 형상을 좌우합니다. 똑같은 것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언제든지 달라집니다. 갑자기 자신의 인생에 밀어 닥친 큰 재난과 상처와 아픔 때문에 크게 낙심해서 일찌감치 인생을 접어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재앙을 터전 삼아 더 크게 도약하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 환경을 재해석하고 바꾸어 나갑니다.


예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 아주 신실한 젊은 집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두 살 먹은 예쁜 딸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두 부부가 동네 슈퍼마켓으로 샤핑을 하러 갔습니다. 딸 아이도 데리고 갔어야 하는데, 아이가 곤히 잠을 자고 있어서 얼른 다녀오려는 생각으로 두 사람만 갔습니다. 슈퍼마켓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딸 아이는 한번 잠이 들면 여간해서는 잘 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마켓에 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삽시간에 온 집 안이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두 내외가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옆 집 아주머니가 맨발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불이 났으니 빨리 집으로 가보라”고 펄펄 뛰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놀란 남편이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단번에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하늘이 노랗습니다. 남편이 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불더미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자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붙잡고 말렸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아내와 함께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고 있을 때, 멀리 서 있던 앰뷸런스 안에서는 놀란 딸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딸 아이는 화재가 나자마자 출동한 소방대원 아저씨에 의해서 구조가 되었습니다. 두 집사 내외는 딸 아이를 발견하고 길바닥에 주저 않아서 통곡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만 연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집이 완전히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귀중품이나 가전 제품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완전히 알거지가 된 것입니다. 앞 날이 막막했을텐데도 두 내외는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항상 싱글벙글입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잘 했습니다. 새벽예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화재가 나던 그날, 이 두 부부의 세상적인 욕심이나 열정도 함께 타버렸던 것입니다.


그 해 추수감사절 날에 두 부부는 사람들 앞에서 감동적인 간증을 했습니다. “자기들은 화재 생각만 하면, 하나님께 언제나 감사할 것밖에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불 때문에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져갈 세상의 소유물들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감사는 꼭 “소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그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비록 알거지가 되어도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해를 결산하는 11월 추수감사의 달이 되었습니다. 올 해는 무엇을 거두었는지 내 인생의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겁이 납니다. 연초 시작부터 모든 것이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자칫 불평과 원망으로 흘러갈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직 내 인생에 남아 있는 소중한 것들을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충분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는 언제나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김세환 목사(아틀란타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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