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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무리와 하이에나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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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0-12-14 | 조회조회수 : 3,0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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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유튜브 등에서 자주 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삶에 대한 프로그램이다. 어떤 동물은 단독적으로 살아가고, 어떤 동물들은 소수가 무리를 이루어 살아간다. 또 어떤 동물들은 많은 수가 조직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조직을 이루고 살아가는 육식동물 중 사자와 하이에나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자는 먹이사슬에서 하이에나보다 높은 최상위층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개체 대 개체가 만났을 때다. 조직과 조직이 만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리 힘이 세고 용맹한 사자라도 다수의 하이에나 무리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야 한다.


한번은 사자 무리와 하이에나 무리가 먹이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하이에나는 그 무리의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 압도적인 숫자로 사자 무리를 압박했다. 여기에 사자도 나름대로 저항을 했지만 하이에나의 수와 체계적인 대응 앞에 사자 무리는 먹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는 와중에 구역 순찰을 나갔던 사자 무리의 우두머리 수사자가 나타났다. 멀리 보이던 그는 어느새 먹이쟁탈전에서 승리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하이에나 무리 가운데로 뛰어들어 그 중의 한 마리를 물어 죽이고 하이에나 무리를 흩어버렸다.


조직이 존재하는 것은 그 조직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 그 조직에 속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조직은 철저하게 조직에 속한 개인을 위해서 존재한다. 만일 조직이 조직에 속한 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조직을 위해서 존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교회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교회를 가리켜 '성도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라고 한다. 교인 각 개인이 모여 이룬 이 공동체는 조직이다. 조직인 교회는 그 조직에 속한 교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신앙의 세계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회들이 모여 이룬 지방이나 연회나 총회 등도 교인들과 개체 교회를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 선교 초기에 교회는 교인들과 사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공동체, 조직이었다. 그런 섬김과 봉사 속에 교회는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것이 그대로 교회의 부흥과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부흥과 성장이 멈추었고, 지금은 정체 또는 퇴보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이렇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조직으로써 교회가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소홀히 한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이런 교회의 조직을 보면서 ‘지금 교회는 교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방이나 연회나 총회는 개체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과연 연회나 총회가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들을 많이 듣는다.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서 지금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 조직이 개인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조직을 위해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군림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개체 교회와 교인들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제 교회는 그 존재의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섬기고 봉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박승수 목사(솔트레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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