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아도니야의 청혼은 왜 반역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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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생애 동안 두 번이나 ‘왕자의 난’을 겪었습니다. 한 번은 압살롬에 의하여, 다른 한 번은 아도니야에 의해서였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에 패하면서 살해당했습니다. 다윗이 나이가 든 후에 솔로몬의 이복형 아도니야는 다윗 왕의 의사와 상관없이 스스로 왕 즉위식을 올렸습니다. 급박한 정황에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와 왕비 밧세바, 그리고 군대장관 브나야와 측근을 통해 솔로몬의 대관식을 급히 거행하여 사태를 어렵게 수습했습니다.
다윗 사후 얼마 되지 않아서, 아도니야가 고령의 아버지 다윗을 수발들던 수넴 미녀 ‘아비삭을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요청합니다. 밧세바는 이 요청을 듣고 아들 솔로몬에게 전합니다. 솔로몬 왕은 친모 밧세바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자, “그를 위하여 내 왕권까지도 구하소서”(왕상 2:22)라고 차갑게 거부합니다. 솔로몬은 곧 브나야를 보내 아도니야를 처형합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젊은 여인 아비삭과 결혼하고 싶다는데 왜 죽이는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의 왕권 계승의 관습과 정치 문화를 보면 솔로몬의 전격적인 아도니야 처단은 훨씬 분명해집니다.
첫째, 아도니야는 이미 한 차례 왕위를 찬탈하려 했던 인물입니다. 열왕기상 1장에서 그는 요압 장군, 아비아달 제사장과 일부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스스로 왕이 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와 밧세바, 사독 제사장, 군대장관 브나야가 이 사건을 다윗에게 알리고, 다윗은 간신히 솔로몬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아도니야의 행위는 반역이 되었고, 그는 제단 뿔을 붙잡고 목숨을 구했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왕상 1:52)라고 말하며, 한 차례 형을 용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아도니야는 이미 왕위 찬탈을 시도했고 용서를 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둘째, 아도니아는 왜 하필 아비삭을 아내로 구했을까요? 아비삭은 단순히 다윗을 시중드는 몸종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노년의 다윗을 시중드는 왕의 침실을 돌본 왕실 여인이었고, 당시에는 사실상 왕의 후궁으로 간주 되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왕이 그와 동침하지 아니하였다”(왕상 1:4)고 굳이 기록합니다. 이는 다윗과 성관계가 없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반면, 아비삭이 왕실에 속한 특별한 위상이 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아비삭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의 어머니가 되는 위치에 속하는 여인으로 보아야 합니다.
셋째, 왕의 후궁을 취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고대 근동에서 왕의 후궁은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새로운 정복자가 이전 왕의 후궁을 차지하는 것은 왕권을 장악했음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정치적 행위로 이해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무엘하 16장에 있습니다. 반역을 꾀한 왕자 압살롬은 다윗의 후궁 열 명과 궁궐 지붕 위에 장막을 치고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백주에 동침하였습니다. 이는 음란 행위가 아니고 “이제 내가 새로운 왕”이라는 정치적 선언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솔로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밧세바는 단순히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는 아도니야의 부탁을 전달하지만, 그녀 역시 왕궁 생활을 통해 이 요청의 정치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 나아가 일부 성경학자들은 밧세바가 이 요청을 솔로몬에게 전달한 데에는, 아도니야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고 그를 처벌할 명분을 마련하려는 정략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지혜로운 솔로몬은 즉시 밧세바가 전달한 요청의 의미를 간파합니다. 솔로몬은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는 내 형이요, 그를 위하여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왕상 2:22)고 반문합니다. 다윗의 후궁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 곧 “왕권을 다시 요구하는 것”이라고 바로 이해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배후에 여전히 아비아달과 요압이라는 강력한 정치 세력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이것이 단순한 혼인 청원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쿠데타가 시작되는 신호로 파악한 것입니다.
결국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한 사건은 한 여인을 둘러싼 연애나 혼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 왕조의 정통성과 하나님의 선택을 거스르려는 왕권 도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를 단순한 가족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왕위 계승 질서를 위협하는 정치적 행동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도니야와 요압은 처형되었고, 아비아달은 제사장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보내졌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 사건을 마무리하며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왕상 2:46)고 기록합니다. 왕실 후궁을 요구한 아도니야의 청혼은 결국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판명되었고, 그 사건은 솔로몬 왕권의 정통성과 안정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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