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침묵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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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호스피스 원목으로 사역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 고통에 침묵하시는 걸까요?"
사랑하는 배우자를 갑자기 잃은 남편의 물음에, 다 나은 줄 알았던 암이 재발한 환자의 물음에, 젊은 나이에 사고로 죽은 자식의 장례식을 치른 어미의 질문에 하나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다. 기도를 해도 병은 낫지 않고, 울부짖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침묵은 신학적인 주제가 아니라 삶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침묵하십니다. 특히 원목 사역의 치열한 현장 속에서 당신의 뜻을 명확하게 보이심직한 고통스러운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대부분 침묵하십니다. 시편의 많은 탄식의 장들과 예언자들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이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 이 침묵을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사역 현장과 겹쳐 깊이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포르투갈 출신의 천주교 선교사들이 일본 선교 과정 중 겪은 사건을 극화한 소설입니다. 일본 선교의 전설적 인물이자 주인공의 은사였던 페레이라 신부가 선교지에서 예수를 저주하며 성화를 밟아 배교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선교의 열망과 새로운 세계에서의 선교적 대망에 가득 찬 주인공 로드리고와 가르페는 약화되어가는 일본 선교를 중흥케 하고 페레이라 신부의 일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으로 잠입합니다.
당국을 피해 숨어서 신자들을 돌보던 신부들은 결국 일본 잠입을 도왔던 소심한 일본인 기치지로의 밀고로 잡히고 맙니다. 주인공 로드리고는 장렬한 순교의 기대감을 품기도 하지만, 감옥에 갇힌 채 친구 가르페 신부가 일본인 신도들과 함께 바닷물에 빠져 순교하는 것을 지켜만 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예수의 성화를 밟고 배교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일본인 신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당합니다. 이제 그의 마음에 갈등이 더해갑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임하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하심은 어느 곳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왜 당신은 계속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까?"
그때 그 침묵 너머로 그 옛날 자신의 은사이자 마음의 영웅이었던 페레이라 신부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미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번듯한 집에 거하며 일본 관리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로드리고의 마음을 온통 뒤집어놓고 맙니다. 일본의 하나님은 살아있지 않으며, 일본 사람들은 한 번 하나님을 받아들인 뒤에 모두 자기들식으로 하나님을 변형시켜 믿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늘어가던 신도 수도, 교회도 모두 일본화된 절과 신사의 신을 섬기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고, 성경의 신은 그저 신사의 여러 신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신부 하나가 배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일본 백성들이 처절한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페레이라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이렇게 극단의 상황에 처해 있는 순간에도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결국 로드리고는 페레이라와 같이 성화를 밟고 그 위에 침을 뱉은 뒤 예수를 저주하고 배교합니다. 그의 마음에는 더 이상 고국 선교본부의 평가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
작가는 하나님께서 인간 군상들의 온갖 추잡하고 약한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시며 모든 사람들을 품으시고, 이해하시고, 기꺼이 짓밟혀 모욕당하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점을 피력합니다. 포교의 열망에 사로잡힌 신부들, 탄압하는 관리들, 그리고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신자들과 자그마한 위협 앞에 배교를 거듭하는 기치지로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품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으며, 다만 침묵하시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절대사랑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고통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심지어 믿음이 흔들리고 떠나가는 환자들과 그 곁의 가족들에게 우리가 함부로 정죄의 돌을 던질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 인간들의 그 어떤 행동이나 타협도 용인하는 침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가 고난을 넘어설 때까지 우리의 연약함을 품어주시는 침묵입니다. 모든 것이 뒤틀어지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영적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는 말씀을 부여잡아야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라고 노래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가 성숙해지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목 사역은 어쩌면 이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통받는 이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일일 것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신앙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믿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며, 마지막까지 지켜달라고 간구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 입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깊은 침묵 속에서 세밀한 음성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침묵 속에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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