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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하나님은 항상 제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그곳에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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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7-01 | 조회조회수 : 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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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미국 원목인증위원회(BCCI)의 전문 자격 유지를 위해 5년마다 돌아오는 ‘피어 리뷰 인터뷰(Peer Review Interview)’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의 전문 원목 사역을 돌아보며 한 편의 성찰문을 작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난 10년 가까운 제 원목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병원의 긴박한 응급실과 중환자실, 암병동,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현장과 요양시설, 수많은 가정의 침상 곁까지…. 그동안 참으로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수천 명의 환자와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 치열하고도 거룩했던 여정을 돌아보며, 문득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을까?’


놀랍게도 제 마음에 떠오르는 대답은 의외로 아주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제가 도착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그곳에 계셨습니다.”


전문 원목으로 사역을 시작한 지 겨우 1년쯤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병원 윤리 위원회 (Ethics Committee)를 모이게 한 26세의 젊은 백인 여성 환자가 있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친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어 자란 그녀는 뉴욕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항공비행사 자격증까지 가졌던,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약에 손을 대면서 온몸이 피폐해졌고, 급기야 패혈증과 뇌졸중으로 두 번이나 ‘코드 블루(심정지 위기)’를 겪으며 사경을 헤매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왔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생명의 줄기는 심장 판막 교체 수술뿐이었습니다. 의료진의 입장은 단호한 ‘수술 불가’였습니다. 수술 중 사망할 확률이 너무 높고, 오랜 마약 남용으로 장기 전체에 혈전이 가득해 성공률이 희박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다시 마약에 빠진다면 건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학적 판단도 작용했습니다. 


반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어차피 죽을 테니 차라리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환자와 가족들의 호소는 절박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깨끗한 삶(sober living)을 살겠다는 환자의 결단과,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양모가 그녀를 돌보려 멀리 플로리다까지 내려오겠다는 간절함이 의료진의 완강함과 팽팽히 맞섰습니다. 


그 긴장 속에서 열린 윤리 위원회는 마침내 이런 역사적인 권고안을 내놓았습니다. “이 환자는 결코 부서질 수 없는 타고난 존엄성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a child of God)이다. 그러므로 환자가 자신의 삶을 위해 내린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며,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녀가 아무리 험한 삶에 찌들어 망가졌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존엄은 세상 그 어떤 도덕적·의료적 이유로도 제거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수술이 허락되던 날 그녀는 아이처럼 기뻐했고, 먼 길을 달려온 양모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냉혹하게도 그녀의 육체는 수술실 문턱을 넘을 만큼 버텨주지 못했습니다. 혈관의 염증을 잡고 부종을 빼내며 수술을 위한 최소한의 메디컬 클리어런스(Medical Clearance)를 기다리는 사이, 그녀의 상태는 매일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 의사와의 면담도 거부하며 힘들어 하였습니다. 


제 마음 한구석에는 무력감과 함께 ‘도대체 무슨 말을 건네야 이 절망을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목회적 조급함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으며 냉소적이던 26세의 죽어가던 여성이 저를 바라볼 때마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 모습 속에서, 그녀가 가장 순수했던 중고등부 시절 교회에서 자신을 온 맘 다해 사랑해 주고 아껴주었던 옛 전도사님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제가 하는 모든 말에 “네~”로 응답하고 거의 정신을 못차리는 중환자실에서도 저의 기도에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그녀는 결국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비참하게 끝난 실패한 인생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그녀가 보낸 마지막 2주간은 그 어떤 삶보다 아름다운 영혼의 회복이자, 하늘 아버지를 향한 온전한 회심이었습니다.


그녀의 병실 문을 열기 전, 이제 전문 원목이지만 초보였던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문을 열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녀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시며 그녀의 영혼을 안아줄 완벽한 채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녀의 어머니는 장례식 영상을 제게 보내며 그녀의 “마지막 2주는 그녀의 26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2주였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원목이 되었을 때 저는 병실에 들어가기 전마다 ‘오늘은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할까’, ‘어떤 성경 말씀을 전해야 할까’ 고민하느라 바빴습니다. 마치 제가 하나님을 환자의 병실로 모셔 가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이들이 원목에게 요구하는 것은 명쾌한 정답이 아닙니다. “왜 하필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라는 질문에 누가 정답을 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함께 울어줄 수 있습니다. 함께 침묵할 수 있고, 함께 나지막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원목은 하나님을 환자에게 데려가는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 눈물의 자리에 함께 아파하며 일하고 계심을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늘 우리보다 먼저 고난 당하는 이들에게 먼저 찾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누군가의 무거운 아픔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때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답을 준비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이미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그저 그 곁에 묵묵히 머물러 줄 뿐입니다. 때로 가장 위대한 위로는 잘 준비된 백 마디의 말보다, 고통의 자리에서 함께 곁을 지켜주는 “동행”(presence)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의 원목 사역을 돌아보며, 저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역을 겸손히 배워가는 한 사람의 사역자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제가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환자의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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