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아인클랑/Einklang’을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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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진실합니다. 간혹 거짓으로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짓으로 말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거짓으로 노래하는 일입니다. 노래하는 행위에는 그 사람의 개성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마음과 무의식과 영혼마저 실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에게 노래를 가르치노라면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되고 결국 영성지도까지 겸하게 되어 버립니다.
무언가에 영혼을 팔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거짓으로 말끔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노래는 그 자체로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노래에는 말이나 글 보다 더 강한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몇 주 동안 영상 예배가 계속 되고 있고 설마 했던 성탄예배와 송구영신예배 마저 영상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2020년이 지나고 희망의 새 해가 밝았건만 이 중세적 우울함의 끝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그런 연유로 지난 수요일 예배 전에는 일부러 밝고 쉬운 찬양을 선곡했습니다. 이 찬양을 통해 분위기가 환기 될 것을 기대하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찬양인도를 했습니다.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할렐루 할렐루 두 손을 들고 주님을 찬양해요”
텅 빈 회중석을 바라보며, 영상 앞에 옹기종기 앉아 있을 성도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이내 찬양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인도자로서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끝까지 불렀지만 찬양 후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데서 한 숨이 몰려왔습니다. 노래 앞에서 제가 진실하지 못했고 코로나로 인한 이 상황을 대하는 자세가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괴리감이 자괴감으로 번져 버린 것입니다.
노래는 늘 진실함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이 있다 하더러도 노래가 선동의 도구로 쓰이는 순간 노래는 저와 같은 마음으로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노래에 있어서 노래 안에 있는 음과 음들의 조화도 중요하지만 노래와 시, 작곡가와 시인, 노래를 하는 사람과 청중, 노래가 만들어진 시대와 상황, 노래가 품고 있는 역사, 그리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는 시대와 상황의 조화 또한 중요합니다. 노래 안에 있는 음과 음들의 조화를 ‘하모니’라고 하는데 독일 사람들은 그 말 대신에 ‘아인클랑/Einklang’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하나의 울림‘이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울릴 때 소리를 뛰어 넘는 진정한 하모니가 펼쳐진다는 의미입니다.
‘Klang/클랑’은 제가 좋아하는 독일어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소리’혹은 ‘울림’이라는 의미인데 발음 할 때 그 소리 자체가 매우 사랑스럽게 울려퍼지기 때문입니다. 혀 전체를 최대한 넓게 펴고 혀끝을 윗이빨 뒤에 살짝 대며 [ klaŋ ]을 발음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함 또는 자연스러움과 연결된 울림은 이토록 신비롭고도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슈베르트의 가곡 ‘Frühlingsglaube/봄을 믿는 마음’은 ‘Klang/클랑’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낸 노래입니다. 이 노래 중간에는 ‘O frischer Duft, o neuer Klang!/오, 신선한 향기, 새로운 울림이여’라는 대목이 있는데 숲 속 한 가운데서 부르는 듯한 성악가의 노래가 메아리로 울리듯 피아노가 그대로 따라하다가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는 부분이 완벽한 ‘아인클랑’을 이루고 있습니다.
Frühlingsglaube/봄을 믿는 마음
부드러운 봄바람이 깨어납니다
여기저기 속삭이고 살랑거리며 밤낮 불어옵니다
이렇게, 창조의 완성은 여기저기서 날마다 계속됩니다
오, 신선한 향기, 새로운 울림이여
이 신비 속에서 무언가를 근심하고 있다면
그대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
지금 여기.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하며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새 창조의 손길이 순간순간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모든 계획과 상상을 넘는 창조의 손길
끝을 모르는 듯 꽃들이 피어나고
아무도 모르는 멀고 깊은 골짜기에도 꽃이 핍니다
이 신비 속에서 무언가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대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
지금 여기,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하며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Text by Johann Ludwig Uhland (1787 - 1862)
Music by Franz Peter Schubert (1797 - 1828),
op. 20 (Drei Lieder) no. 2, D. 686 (1820).
번역 조진호
어떤 울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자(因子)가 되는 에너지와 지속해서 떨려 주는 무언가와 공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에너지와 떨림과 공간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며 공존 할 때 ‘클랑’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삶의 공간 여기저기에서 작은 ‘클랑’들이 모여서 ‘아인클랑/Einklang’을 이룹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맞이하며, 하나님께 의탁하는 가운데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삶의 곳곳에서 ‘아인클랑’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코로나 상황은 여전하지만 분명히 종식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우리 또한 살아서 이렇게 삶의 자리에 각자 서 있습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온통 바꾸어 놓은 것 같지만 오래된 악기가 깊은 소리를 내듯 우리 또한 연단되었고 성숙했습니다. 올 해는 너무 심한 걱정이나 조바심이나 선동 없이 우리 삶의 자리 곳곳에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인클랑’이 울려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그 희망을 품고 새로운 한 해를 당당하게 시작합시다!
Nun muß sich alles, alles wenden!
지금 여기.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하며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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