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찬양대는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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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데이빗 윌리암슨(David Williamson)이 2010년도에 출간한 “하나님의 노래하는 자들”(God's Singers: a guidebook for the Worship Leading Choir in the 21st century)이라는 책의 머릿말에 실린, 저자의 교회음악 동역자인 마이크 하트랜드(Mike Hartland)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미국교회의 찬양대 무용론과 찬양대 파라다임의 변화가 한국교회에서도 언제인가, 아니, 벌써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전에 미주중앙일보에 실린 “디지털 공감”의 글이 이와 무관치않다 여겨 먼저 소개합니다. 제목은 “아름다움이 찬양의 필수는 아니다”입니다. 이 분은 교회음악 전문인은 아니지만 그의 평신도로서의 날카로운 지적 속에 종교개혁의 울림이 있습니다. 이 두개의 글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음악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름다움이 찬양의 필수는 아니다
(데이터과학자 김사무엘 박사)
("Digital Empathy"에 실린글)
솔리스트의 높고 아름다운 음성이 숨죽인 청중이 가득 찬 공간을 채운다. 지휘자의 손에는 그 끝에서 소리를 뿜어내기라도 하는 듯한 지휘봉이 공기를 가르며 춤을 춘다. 심장박동과 공명을 이루는 드럼 소리가 건물을 울린다.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악기 연주와 시선을 사로잡는 무대 장치가 어우러져 감동적인 연출을 이루어 낸다. 음악이 끝나면 ‘브라보’ 대신 ‘아멘’이라 외치는 청중이 있는 이곳은 공연장이 아니라 지역 교회의 예배당이다.
기도, 말씀, 성례와 더불어 예배에 필수적인 요소인 찬양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른 음악적 요소를 취하는 자유로움이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류의 음악이 따로 있었다면 시편에 악보까지 함께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셨겠는가. 따라서 감각적인 대중음악 형식을 경박하다 배척할 이유도 종교개혁 당시의 칼빈의 시편 찬송을 지루하다 터부시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찬양의 필수는 아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는 유익한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음악 교육은 받아본 적도 없는 시골 노인의 읊조리는 찬양과 많은 연주 경력이 있는 거장 음악가의 찬양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
그럼에도 많은 지역 교회는 그 아름다움을 확보하기 위해 음악으로 봉사하는 이들이 특권을 갖는 것을 방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음악가를 고용하여 사례를 주는 일을 당연시한다. 별다른 재주가 없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교회를 섬기는 성도와는 다른 특별한 대우를 해가면서까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아름다운 찬양은 누구를 감동시키기 위한 것인가.
중세 교회에서 성장기의 소년을 거세하여 노래하게 했던 아름다움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우상숭배를 오늘날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음악은 주방 설거지와는 달리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일’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온 회중이 함께 해야 하는 모두의 찬양을 음악가에 떠넘기고 그들의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모두의 찬양을 하자. 음정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고 박자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외쳐 그것으로 우리 모두의 찬양이 되게 하라.
"찬양대는 죽었는가?"
[이하는 Lifeway의 Worship Director 마이크 하트랜드(Mike Hartland)가 데이빗 윌리암슨(David Williamson)의 저서 “하나님의 노래하는 자들”(God's Singers: a guidebook for the Worship Leading Choir in the 21st century)에 쓴 머릿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1966년 4월 8일 타임지 표지는 “신은 죽었는가?” 라는 질문으로 세계를 강타했고 잇달아 일어난 논쟁은 학계와 교회 모두의 집회장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요즈음엔 예배 인도자들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새로운 질문을 자주 듣게되는데 그 질문은 바로 “찬양대는 죽었는가?”입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교회가 음악을 통해 예배드리는 방법에 있어서 무언가 변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의 찬양대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사역의 성패를 좌우할 기정사실의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왜 그렇지 아니했겠습니까? 찬양대는 일반 성도들이 교회사역의 리더십에 참여할 수 있고, 회중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숫자적으로 가장 큰 단일 독립체였습니다.
현대교회가 발전함에 따라 찬양대음악도 계속 발전하여 왔습니다. 스타일의 변화는 찬양대의 역할과 필요성에 새로운 인식을 가져왔습니다. 새로 세워진 많은 교회들이 찬양대를 전혀 택하지 않고, 대신에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다재 다능한 두어 사람의 음악가들에 의해서 예배가 인도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찬양대가 교회에서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찬양대가 쇠퇴함으로써 예배가 발전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찬양대는 죽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온 것입니다.
이때, Mike Hartland는 Dave Williamson을 알게 됩니다.
이 다재다능한 음악인이며 뛰어난 관현악 편곡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의 사역의 여정을 분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정은 예배에 열정적인 그리스도의 영적 제자의 시각으로 찬양대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양육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탐색은 그가 전에는 전혀 가 본적이 없는 곳ㅡ 예배에 관한 아이디어와 개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가 예배에서 함께 경험하는 일에 찬양대가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와 같은 영역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걸어온 사역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데이브가 이 책("찬양대는 죽었는가?")의 원고 초안을 갖고 내게 왔을 때 나는 그의 사역의 여정을 담은 회고록과 메모를 대하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 책 “하나님의 노래하는 자들”에서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드러내는 뜻이 깊고 해박한 해석과 표현이었습니다. 데이브의 예배에의 열정과 예배에서의 찬양대의 역할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아멘!”을 자아내었습니다.
나는 예배 속의 찬양대의 영원한 원리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와 그의 사명에 전적으로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진실은 우리 편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배 속의 찬양대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아이디어가 아니었고 하나님 당신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책에서, 예배드리는 찬양대의 역할에 관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정적이신가를 설명하는 성경적 모델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당신의 예배 담당 목회자와 담임 목사님과 함께 나누십시오. 모든 찬양대 인도자들에게 전하십시오. 당신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책을 읽도록 도전하십시오. 이 책이 담고 있는 진리를 당신이 섬기고 있는 사역에 적용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Worship Leading Choir의 미래의 세대들을 일으키는 사역에, 모든 교회들이여 헌신하시기를! – 하나님의 찬양대에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우리 모두 영원토록 노래 부를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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