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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가 만나는 사람들] 비비안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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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5-09-23 | 조회조회수 : 6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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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나가 제 사무실에 들어섰습니다. 비비안나의 온몸은 축 처져 있어서 젖은 옷처럼 늘어져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얼굴은 차가운 바람에 노출되어서인지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모습입니다. 신고 온 신발은 비에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내 두 손으로 비비안나의 얼굴을 감싸주면서 묻습니다.


"Weather like this you don’t have to come to my office?"


비에 온몸이 젖은 비비안나는 얼마나 추웠는지 나의 품에 살며시 안기면서, "오지 않아도 되는 걸..." 하는 내 말에 씩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Because we have an appointment today!"


비비안나는 우직할 정도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나하고의 만남이 있은 지가 거의 6년이 다 되어갑니다. 많은 가정폭력 희생자이자 홈리스(domestic violence homeless)들을 만나고 상담도 해보지만, 비비안나처럼 자기의 계획을 잘 실천하며 꿋꿋이 나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처음 비비안나가 우리 프로그램에 와서 내가 비비안나 담당자로 만나게 되면서 비비안나는 왠지 말이 없었습니다. Intake을 하느라고 여러 가지 질문에 관해서 물으면 아무 표정이 없이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도였습니다. 얼굴엔 아무 감정표현이 없었고 앉은자리에서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비비안나의 카운슬러로 만나게 된 지도 두 달이 흘렀을 때입니다. 마침 계획에 없던 우리 프로그램에서 퍼머넌트 타운하우스 2 베드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침 비비안나가 입주하게 되는 퍼머넌트 아파트에 살던 00가 마약을 상습 복용하는 바람에 이 아파트에서 강제 퇴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비비안나는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여성 보호소(women shelter)에 있었고, 비비안나의 아이인 리키는 청소년 보호소에 있으면서 모자가 함께 살 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키는 13살입니다. 동그란 눈에 아주 잘생긴 얼굴과 훤칠한 키의 매력적인 소년입니다.


비비안나가 새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비비안나가 새로 입주한 타운하우스에는 아무런 가구도 없어서 나는 Good Will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레이첼에게 전화를 합니다.


"Hello Rachael! Do you want to be angel again?"


레이첼은 내가 이렇게 전화를 하면 언제나 이렇게 대답합니다.


"Regina, you are angel, I am the angel’s boss!"


우리는 서로 장난을 하며 서로를 높여줍니다.


며칠 후 나는 가까운 지인의 트럭을 빌려서 man program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는 몇 명의 남자 노숙자들에게 부탁을 하여 Good Will에 가서 비비안나와 리키에게 필요한 가구들과 집기들을 사가지고 와서 비비안나가 새로 입주한 방을 꾸며줍니다.


물론 헌 가구이지만 그래도 쓸만한 것들을 모아서 가지고 온 터라, 가구가 채워진 방은 무엇인가 꽉 찬 느낌이었습니다. 가구가 들어오자 보통 거의 아무 말이 없던 비비안나가 얼굴엔 생기가 돌고 기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겁니다.


"Regina, can I have water color painting?"


나는 무슨 말인지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What do you need?"


"Water color painting?"


내가 몇 번을 물어보자 비비안나의 목소리가 다시 작아집니다. 나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묻습니다. 비비안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하다가 고개를 숙이며 "Never mind!" 하고는 입을 닫습니다. 이제 막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는데, 처음부터 대화가 안 되면 서로 고생할 것이 뻔한 터라 다시 재차 묻습니다.


"Vivienne, tell me what do you want?"


이제 비비안나는 입을 꽉 다물고 아예 얘기를 안 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나도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어서 '오늘은 그냥 가야겠구나' 하고 집을 나서는데 리키가 내 뒤를 따라 나옵니다. 그리고 역시 수줍은 얼굴로 얘기를 합니다.


"My mom love to have water color because she likes painting."


"Do you think you can get water color for her?"


다음 주에 나는 비비안나더러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지난번에 아는 자매님이 한국을 갔다 오면서 내게 선물해 준 수채화 물감 한 통을 주고, 커다란 도화지 set도 사주었습니다. 나도 기회가 있으면 수채화를 그리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선물이어서인지 비비안나의 눈에는 눈물이 뚝뚝 흐릅니다.


우리는 매주 만나면서 비비안나의 앞길에 대해서 계획을 하고 리키는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비비안나의 집을 방문한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정말로 너무도 멋있게 그린 풍경화에 눈이 갔습니다. 그림은 밝은 색조의 풍경화였습니다. 마치 새로운 희망을 말하는 것처럼! 비비안나에게 물어보니 지난번 내가 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나 감탄을 해서 한참을 말을 잊고서 그림만 바라보았습니다. 나도 여고 때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한동안 나부영 화가님의 화실에 다닌 적이 있었거든요.


'와우, 비비안나에게 이런 솜씨가 있다니!'


비비안나는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고, 오이 농장에서도 농장주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받은 엄마의 등에 업혀서 어릴 때 미국으로 밀입국해 온 비비안나는 네바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비비안나의 엄마는 미국인의 집에서 파출부로 일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엄마 혼자 버는 돈으로 살아가야 하는 두 사람의 생활은 늘 빠듯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비비안나가 공부를 잘하고 또 특별히 미술에 소질이 많아서 각종 상을 타고는 했습니다. 엄마는 비비안나에게 희망을 갖고 정말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비비안나가 11살 되던 해에 엄마는 트럭을 운전하는 역시 스패니쉬인 과테말라 출신의 프레드를 만나서 데이트를 하더니, 얼마 후 결혼을 해서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갔습니다. 엄마는 남편인 프레드가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어서 집 근처에 있는 양로원에서 밤에 일하게 되었고, 비비안나는 밤에는 새 아빠와 함께 있어서 무서운 줄을 몰랐습니다.


비비안나에게는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엄마가 밤에 일을 나갈 때면 새 아빠인 프레드가 비비안나를 그냥 두는 것이 아닙니다. 비비안나는 울면서 새아빠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해 보았지만 프레드의 협박에 그냥 말없이 당했습니다.


“내가 이혼하면 너와 네 엄마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래?”


오랫동안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던 비비안나는 임신을 했고, 그 아이가 지금의 리키입니다. 비비안나 엄마도 같은 시기에 임신해서 비비안나에게는 같은 아버지를 둔 동생과 아들이 있습니다.


얼마 후 점점 불러오는 배를 숨길 수가 없게 된 비비아나는 이 모든 사실을 엄마에게 실토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영주권자 남편을 만나서 이제는 불안하지 않게 살 수 있구나 생각하며 행복해했던 비비안나의 엄마는 너무나 화가 나서 남편을 고발했고, 프레드는 과테말라로 도망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삭이 된 비비안나는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함께 임신 중이었던 엄마와 비비안나는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비비안나는 아무런 연고지도 없는 이곳 시애틀에 아들과 함께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비비안나는 A 스토어의 베이커리 디파트먼트에서 케익 디자인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색감에 자신 있는 비비안나는 베이커리에서 특별한 케잌을 만들며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고, 또한 월급도 많이 올라 이제 몇 년 더 열심히 일해서 작은 콘도라도 사고 싶어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이제 비비안나는 웃기도 하고 눈물도 흘립니다. 이젠 비비안나는 내 고객이 아닙니다. 자립해서 살고 있는 비비안나는 우리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비비안나는 자주 나에게 연락을 해옵니다. 그리고는 얘기를 합니다.


"레지나가 내게 물감을 사주고 직장을 찾아주어서 정말 고마워. 레지나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어!"


나는 비비안나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통증이 옵니다(그렇게 힘든 생활을 했으면서도 이렇게 밝은 그림이 나오다니!). 그리고 비비안나를 가만히 안아 줍니다.


그리고 얘기를 합니다.


"Vivian, you are the greatest person!"


레지나 채(워싱턴주 킹카운티 멘탈헬스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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