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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며 버티는 갈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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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23-10-30 | 조회조회수 : 3,5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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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와 제 아내는 지난 주일 저녁 캄보디아 선교지와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2023년 특별한인총회’에 다녀온 후였기에 몸이 많이피곤했습니다. 더구나 한인 총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왔기에 마음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총회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임원 선출을 위한 줌 미팅을 주일 오후에 가졌고, 한인 총회장으로서의 각오를 보내달라는 여러 언론의 요청을 밀린 숙제 하듯이 해놓고 떠나야 했습니다. 11월1일부터 시작되는 ‘다니엘 기도회‘ 책자에 들어갈 인사말과 기도 제목까지 정리하니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이었습니다. 


    공항입구에 들어서는데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잔뜩늘어선 자동차의 행렬로 인해 마음 졸여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거북이걸음으로 겨우 게이트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고 탑승구에 도착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피로때문인지 눈 몇 번 붙이니 열 몇 시간의 비행이 그리 힘들지 않게 지났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국의 가을 하늘이 푸르고 맑았습니다. 저마다 맵시를 뽐내며 높이 솟은 빌딩들, 숲을 이룬 아파트 단지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한눈에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분주한 도심을 지나는 사람들의 활기찬 발걸음에서는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느껴졌습니다. 단정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화려한 상점들의 불빛에서 이제는 경제 강국에 들어섰다는 자신감과 문화적선진국의 위용마저 느껴졌습니다. 


    숙소 근처의 공원을 산책할 때였습니다. 사람 키만큼 높이 솟은 갈대가 숲을 이루며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의 파수꾼이라고 하는 갈대밭을 지나는데 안내 표지판에 ‘갈대’라는 이름 대신 ‘억새’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키도 비슷하고 모양도 닮은 갈대와 억새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처럼 많은지 그 표지판은 억새와 갈대의 차이를 친절하게 설명하고있었습니다. 


    갈대나 억새는 모두 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식물로 가장 큰 차이는 서식지라고 하면서, 산이나 들에서 자라면 ‘억새’고, 강이나 늪지대에서 자라면 ‘갈대’라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억새와 갈대의 또 다른 차이는 쓰임새였습니다. 억새는 억세지 않아서 사료로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설명을 읽다가 억새라는 이름 때문에 억셀 것이라고 오해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갈대가 오히려 억새보다 억세기에 사료로 쓰지 못하고, 빗자루나 돗자리, 지붕을 잇는 재료로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그 밑에 나온 설명에 한참 동안 눈이 머물렀습니다. 억새는 속이 꽉 차 있고, 갈대는 속이 비어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속이 비어 있는 갈대가 더 억셀 것 같은데 반대로 속이 가득 차 있는 억새가 억세지 않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설명을 읽는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파스칼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점 하나 같은 가장 연약한 존재라는 의미로 인간을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자신을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다.’ 


    이 글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 사상가였던 파스칼이 많은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쓴글들을 모아 낸 ‘팡세(Pensees, 생각들)’라는 제목의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갈대같이 연약한 인간이지만, 바른 생각을 갖고 사는 한 절대 약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가득 채워져 있는 사람은 강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바람 앞에서 더 쉽게 부러질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고난을 지나면서 아로새겨진 상처가 낸 자국이, 아픔과 눈물의 세월이 낸 구멍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속은 텅 비었지만 오히려 그 속이 비었기에 큰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는 갈대처럼, 우리도세월이 만든 상처와 아픔이 낸 구멍이 있기에 세상을 버티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흔들리지만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갈대처럼 오늘도 상처와 아픔을 딛고 흔들리지만 굳건히 삶의 자리를 지키는강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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