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성가(찬양)대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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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0장
다시 역대하 20장 14절부터 24절로 갑니다. 거기엔 아주 다른 장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고, 그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선한”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산당과 우상들을 폐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와 금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 모두가 기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전에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세 나라의 군대가 유대를 멸망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왕에게 전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가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러분도 저처럼 그 기도가 마음에 들 것입니다.
백성들이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야하시엘이라는 이름의 한 성가대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함께 14절의 말씀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저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대하 14-24절)
멸망의 위기를 당한 왕 여호사밧은 최선의 길을 택합니다. 그가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으고, 개혁을 시작하고, 백성들이 금식하고 기도하도록 인도하는 조치들을 취해 온 것을 주목하십시오. 이제 그는 왕으로서 교만하지 않고 정확히 올바른 행동을 취합니다. 그는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통로를 통하여 해답을 주십니다.
야하시엘을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시기적절한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감사하며,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들이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다음날 아침, 성경은 간단하게 말합니다, “그들이 나갔다.” 여기에 믿음의 길을 걷는 주제에 관한 완벽한 메시지가 있지만, 지금은 그 주제를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명백한 절망의 상황을 향하여 걸어 나갈 때, 여호사밧은 백성들과 상의하고 유례가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즉, 모든 남성 찬양대를 군대 앞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거의 최고의 믿음의 행위가 요구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자신들이 제일 먼저 공격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찬양대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까요?
그들은 노래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노래합니까?
그들은 역대하 5장에서 솔로몬의 성전봉헌예배에 모였던 백성들 가운데로 하나님의 영광을 안내했을 때 불렀던 그 동일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원래, 시편 100편과 106편, 그리고 특별히 136편에 나온 이 찬양, “여호와를 찬양하라(역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의 가사는 이와 같은 극적인 순간에 특히 적절해 보입니다. 그 찬양의 가사는 두려움이나 절망의 단어들이 아닙니다. 그 가사는 하나님은 긍극적으로 선하시며, 따라서 정의로우신 분이라는 확신 속에서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있었던 일과 꼭 같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마련해 놓으신 계획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언제? 그들이 노래하며 찬양하기 시작할 때!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연의 일치나 혹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고, 처음부터 계속된 하나님의 의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야하시엘을 통한 그 예언이 전해진 순간부터 침묵의 밤까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의 믿음의 행진까지, 어느 시점에서든지 역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찬양대가 인도하는 자신의 백성의 찬양에 응답하시기를 스스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찬양대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 탐구하는 우리가 이 역대하 20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에게는, 예상치 못했고 다소 위압적인 모델인 영적 전쟁의 선두에 선 전사로서의 찬양대입니다! 나중에 찬양과 기도를 통한 영적 전쟁과 그리고 예배 인도 찬양대의 삶의 역할과 실행에 대하여 토론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전쟁으로의 부름이란 상황은 주로 예술적인 감성을 다룬다고 생각하는 찬양대인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습니다. 뛰어난 음악가요, 작곡가인 다윗 왕이 용맹스러운 전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지나친 요구는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그래서, 저는 본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찬양대는 사람의 아이디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이디어인가? 저의 대답은 무엇이었죠? 이 시점에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두말할 것 없이 찬양대는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이 말은 무엇보다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찬양대 해체 계획들이 급히 중단되어야 좋을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우리의 조그마한 새 내쉬빌 교회가 예배시간에 정규적으로 참여하는 찬양대를 갖게 될 것이라고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이 찬양대는 제가 인도해 보았고 지금까지 보아온 찬양대와는 다른 찬양대일 것임을 다짐했습니다. 이 찬양대는 얼마나 잘 연주하여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인가를 추구하는 찬양대는 아닐 것입니다. 대신 이 찬양대는 예배 인도자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한 가지 핵심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찬양대 경험을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할 것입니다. 즉 우리 찬양대는 무엇을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가? 그 해답을 안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초를 둔 그 실행 방법을 알아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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