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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의 신학적 균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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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2-22 | 조회조회수 : 4,4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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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신학적 균형 (1)

WORSHIP IN THELOGICAL BALANCE

by Dr. David K. Blomgren


   

지난 여러해 동안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부담감을 경험해 오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확장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적 부담과 공동체 반발에 따른 관계적 부담 그리고 도덕적 문제와 강력하고 사악한 적개심에 대한 사회적 부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믿는 성령으로 채워진 교회도 이 부담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압박을 통하여 교회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 부담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의 하나는 오늘날의 교회를 예배의 신학적 균형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균형을 미워하시며 그것은 그에게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잠 11:1). 교회와 각 개인을 저울에 달아보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단 5:27; 시 62:9).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의 교회가 어떤 불균형이 있는지 저울에 달아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어떻게 달아보실까요? 잠언 16장 11절은 말합니다, “정확한 저울과 천평은 주님의 것이며,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 (잠 16:11). 이말은 적절한 균형은 주님께서 원하여 만드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WEIGHTS”라는 단어는‘eben이라는 히브리어로써 “돌맹이” 이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엔 불균형을 저울에 추돌을 더 놓음으로써 균형을 바로 잡았습니다. 이 추돌들은 저울에 압력을 가하여 눌러서 다른 쪽과 균형을 이루게 합니다. 즉 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부담과 압박은 우리에게 균형을 가져다 주시려는 하나님의 일(work)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바로 잡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예배의 신학적 불균형은 어떤 것들일까요? 특히 성령사역에 중점을 두고있는 교회의 예배 가운데 어떤 불균형들이 더 큰 차원으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동성과 그의 영광의 더 큰 계시 가운데 나타내시는 그의 임재를 저지하고 있을까요?

   

불균형 #1: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경외적인(reverencial) 면을 희생시키며 관계적인(relational) 면에대하여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입니다. 

   

이 불균형은 고교회(high church교회의 권위의식 존중)의 공식적인 예배의 의식주의에 맞서는 우리의 반발의 결과로써 생긴 것입니다.  성령으로 채워진 교회는 경외심을 삶에서 취하여 예전에 담고 우리의 영에서 취하여 성찬식에 놓으며 찬미에서 취하여 예배행렬식에 배치하여 잘못을 범한 죽은 종교에 대응하여 왔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예배의 촛점에서 제하여 버렸고 경외심을 가시적인 형태와 예식에서 보여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경외심을 채색 유리창문과 공허한 상징화로 표현하게 하였습니다. 

   

생명이 없는 종교의식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적절했고 타당했습니다. 그 결과는 두두러지게 비공식적이며 기본적으로 비체계적인 예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반응은 예배를 의식(ritual)에서 실제(the real)로 되돌리며 예전(liturgy)에서 사랑으로, 연대기도문(litany)에서 자유함(liberation)으로, 그리고 기념식으로부터 축제로 되돌아 오기를 제안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예배의 뚜렷한 특징은 자유함과 느슨함과 임시적임과 비공식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 관계의 역동성으로써의 예배였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올바른 것이지만 우리의 예배는 거의 추가 너무 반대방향으로 기울도록 용납함으로 인하여 오히려 불균형을 초래하였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곳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상실하였습니다. 진정한 경외는 역동적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시 89:7은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greatly feared) 둘러있는 모든자 위에 경외(in reverence) 해야 할 자시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경외(Reverence)는 깊은 존경심이며 경이(awe)와 공경의 어울어진 뜻입니다. 그것은 경의(homage)이며 당연히 드려야 할 존귀와 순복에 대한 인식입니다. 경외는  경건한 두려움과 겸허함으로 통치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지극히 높여드림을 인정합니다. 

   

경외(reverence)와 우정(comradery) 사이에는 세심한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우정은 동료나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나  친구로서 하나님께 접근하는 관계적 측면입니다. 하나님과 믿는 자들 사이에는 분명히 이런 모든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모든 경외감은 상실되고 맙니다. 다음과 같이 관계적 불균형의 특성인 세가지의 경외의 적(enemies)이 예배에 존재합니다. 


a. 익숙함 (Familarity). 친구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생기는 위험은 하나님에 대하여 너무 익숙하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저 위에 있는 “신”일 뿐입니다. 우리의 건물들이 대개 통상적이듯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 또한 흔히 통상적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말씀을 하품으로 대하며 찬송을 다소 지루한 태도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경건함과 경이로움은 없고 바로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하게 됩니다. 


b. 우애(Fraternity).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절친한 형제나 하늘에 계신 대단한 파트너나 믿음직한 단짝이나 혹은 경건한 친구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힘들 때 당연히 친구로서 도와주는 동반자로서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c. 경솔(Flippancy).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 통념적이어서 그에게의 접근은 무심하고 경솔하게까지 될 수 있습니다. 한 주일학교 코라스는 하늘의 왕국의 전화로 “교환원, 나에게 천국을 주세요” 라는 기도문을 노래합니다. 주님의 기쁨은 성령의 포도주에 “곤드레만드레 취하기” 위하여 성 베드로 주점으로 내려가는 모양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큰 놀이터이고 우리가 영원토록 파티를 즐길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강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이러한 태도보다는 훨씬  더 큰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이 용납할 만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 12:28-29). 우리의 예배 가운데의 경외심은 감정이나 흥분(hype)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더욱더 알게 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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