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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굳은 마음을 위한 부드러운 음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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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2-08 | 조회조회수 : 3,6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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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효과적 사역

(MUSIC’S EFFECTIVE MINISTRY)


다윗의 음악은 효과적이었습니다(약효가 있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사울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탔고 그 때마다 사울에게 내린 악한 영이 떠났고 사울은 제정신이 들었다”(삼상 16:23). 버클리 개정판은 “그것은 사울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기록합니다. “상쾌한” 그리고 “편안한”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라박(ravach)인데 “넓어지는, 공간이 커지는, 안도감을 가져다 주도록 여유공간을 부여하는”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모파트(Moffatt)는 “그는 사울이 자유롭게 숨을 쉴 때까지 연주하였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예배의 회복을 위하여 이 젊은 청년을 택하시고 그에게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이 젊은이의 음악은 캄캄함에 휩싸여 우울증을 알고있는 왕의 가슴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주의 기록된 말씀을 채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그가 만든 원시적인 현악기를 어께에 메고 사울이 살고 있던 그 어두운 곳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한편 사울은 자신의 질병을 위해 무엇이든 시도해보려고 했습니다. “사람을 구하라. 누구든 상관없다. 그를 데려오라.” 왜 그런지 다윗의 음악은 이 고뇌의 사람에게 있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풀어 주어 그 안에 있는 사나운 짐승의 마음을 달래어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떠날 쯤에는 그는 안정이 되었고 사악한 영이 떠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의 침실로 들어가게 하려고 음악이라는 재능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은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이 자신의 혼을 어루만져 준 젊은 목동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두 가지를 소유하기까지는 완성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즉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과 시편가(a Psalter)라고 불렀던 찬송가( a hymnal)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성경책(the Book)과 그 믿음의 깊이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표현하도록 도와 줄 자매편(a companion volume)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이 두 요소가 함께 조화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예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성경의 진리 안에 있는 우리의 뿌리를 깊게 하는 교리의 선포와 그것이 노래에 담은 우리의 입술과 우리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 안에서 우리의 믿음의 표현과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거나 인간의 소리가 존재하기 훨씬 전에 음악이 존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욥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새벽 별이 함께 노래하였었느니라.” 그 때 별들이 목소리를 내었든지 아니면 천군천사들이 소리를 내어 하나님께 노래했다는 뜻일 겁니다. 나는 후자의 뜻으로 믿고 싶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보좌에 둘러서서 창조주께 찬양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어떤 화음의 음악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계시록의 장면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모일 때, 우리의 최고의 표현은 노래 안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께 이렇게 노래할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세상이 생기기 전에 노래가 있었고 세상이 지나간 후에도 노래가 있을 것이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많은 노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진실로 교회 밖에서는 그 분께 노래로 찬양을 드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지난 한 달 동안에 혼자서 얼마나 자주 노래를 불렀나요?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당신의 찬송을 얼마나 불렀나요? 우리의 목소리는 자주 성경낭송에 관여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께 성경말씀을 노래로 부르는 일에는 좀처럼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부분이라는 점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잊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여 가면 갈수록, 나는 사역에 있어서의  음악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고 인정하게 됩니다. 나는 마틴 루터의 다음과 같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다음으로 음악은 최상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 하나님께서도 음악에 찬성 표를 던지신 것 같습니다. 그의 책 66권 가운데 가장 긴 책이 히브리인의 찬송시인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찰스 해돈 스펄전은 그의 시편 주석서인 "다윗의 보물"(The Treasury of David)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시편에 대한 즐거운 연구는 나에게 한이 없는 유익과 계속 늘어나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는 후에 시편을 “비할 데 없는 책”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얄팍한 노래가사와 쉽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소곡들만을 좋아한다면 시편을 진정으로 즐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시편은 음악의 정의를 “예리한 사고와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마음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예술”인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시편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음악입니다. 시편은 피상적이거나 얄팍한 서술이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몇개의 시편들이 있습니다, 시1편, 23편, 91편, 시100편, 그리고 시 119편의 일부분... 그러나 대개는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시편에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나는 영적 성숙으로 가는 사람들이 소생의 시간과 회복의 시간과  감정이 삐긋거리는 때를 위하여 시편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눈여겨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시편으로 돌아옵니다.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당연하며,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시편이라는 책은 인간의 혼의 감정이 그 안에서 표현을 발견하는 책입니다. 당신의 기분이 어떠하든지, 나는 당신도 저처럼 변화하는 기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기분을 표현하도록  당신을 도와줄 시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기쁘세요? 난 당신이 기쁘게 노래할 수 있는 시편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슬프세요? 나는 거기에 알맞는 시편을 찾아 드릴수 있습니다…시편은 인간의 전반적인 감정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시편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자각과 의미에서 우리를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이 시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특정한 어조가 무엇이든, 장조이든, 혹은 단조이든 저자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시편이라는 책에 고유한 특징을 부여합니다."


나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은 내가 그분에게 나의 찬송을 노래하는 그 때에 최고조에 달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찬송충만한 성도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멜로디는 하늘로 곧 바로 방송됩니다, 생방송으로! 거기에는 하나님의 안테나가 항상 수신하고 있으며, 거기서는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당신의 노래의 수고가 항상 고맙게 여겨집니다. 


당신이 얼마나 아름답게, 혹은 초라하게 소리를 내는지에 신경쓰지 마세요. 보통 큰 소리로 사람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그런 패배의식을 떠내려 보내기에 충분한 소리로 크게 노래하세요. 내성적인 거리낌과 주저함의 우리(cage)에서 벗어나십시오. 크게 노래하세요! 힘차게 노래하세요! 당신은 성가대원이 되려고 오디션을 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주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을 담아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 마친 후에 자세히 들어보면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기쁨으로 화답하는 소리를 들게 될지 모릅니다. 


굳은 마음을 위한 부드러운 음악, 그것이 바로 다윗이 사울을 위하여 준비한 것입니다. 그것이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혼의 음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시작해야 하는 자리(the place)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인간의 절망과 우울의 철장으로부터 해방된, 긍정적이며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갈망과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그는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음성이 전하는 음악을 필요로 하고 있는 그의 양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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