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을 곤두세우는 한 마디 “지금은 자살 생각은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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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기(엄마)는 안나를 주님이 주신 십자가로 여기고 잘 감당해 보려하고 안나를 위해 특별히 금식기도를 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엄마는 눈물까지 살짝 비쳤다” … 그런데 …
고등학교 10학년에 다니는 안나(가명)양은 학교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상담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안나의 팔과 허벅지에 있는 무수한 상처를 보고 안나 양에게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의심했지만, 안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걱정이 되었던 선생님은 안나에게 반드시 상담을 받으라고 강하게 권유하셨고, 안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상담실로 왔다.
상담실에서도 안나는 말이 없었다. 보호자로 동행한 엄마는 안나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자신을 힘들게 했는지 푸념을 늘어 놓았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안나는 항상 사고를 치고 일을 꼬이게 만들어서 자기가 몇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는 안나를 주님이 주신 십자가로 여기고 잘 감당해 보려하고 안나를 위해 특별히 금식기도를 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엄마는 눈물까지 살짝 비쳤다. 이 상담도 담임 선생님 전화를 받고 자신이 전화걸어 예약하고 안나를 설득해서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이다.
미성년자가 상담을 받으러 올 때 보통은 보호자가 동행한다. 보호자는 간단히 상담에 대한 안내를 받고, 미성년자를 대신해서 동의서에 사인한 후에 상담실 밖으로 나가서 상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안나의 엄마는 마치 자기가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인 양 이야기가 끝날 줄을 몰랐다. 여기서부터 상담자는 벌써, 이 엄마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지, 그리고 모든 주변 환경과 시간과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 하는 사람인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엄마와 십 수 년을 함께 산, 그것도 절대적 약자로 함께 산 안나가 얼마나 무거운 압박을 느꼈을지, 안나와 말 한마디 해 보기 전에도 이미 짐작할 수 있다.
보호자가 알아서 자리를 뜨지 않으면, 상담자가 내보낼 수밖에 없다. “어머니, 이제 안나 양과 대화를 좀 나눌테니, 어머니께서는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준다. 그러자 마지못해 상담실을 나가면서 엄마는 안나를 한번 쏘아본다.
상담자와 단 둘이 남아도 안나의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상담자가 진땀을 흘리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서 안나와 대화를 이끌어가려 하지만 안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르겠어요”라는 답변 외에는 말이 없다. 내담자가 이렇게 상담에 비협조적이면 상담자는 무척 힘이 든다. 상담자가 협조적이어도 인간 마음을 탐색하고 치료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벽을 보고 상담하는 것 같은 상황이면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한다.
할 수 없이 상담자는 첫 상담 시간에 반드시 해야 하는 몇 가지 질문과 정보 수집용 질문들을 하고 안나는 ‘예, 아니오’ 답변을 하면서 간신히 시간을 채워본다. 첫 상담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질문 중 하나는 내담자의 안전과 관련된 질문이다. 즉, 혹시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지, 최근 자해를 한 적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안나는 묵묵무답이었다가 모기 소리처럼 말한다. “지금은 자살 생각은 안 해요.”
이 답변은 참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리고 상담자는 이 답변과 관련해서 몇 가지의 후속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일단, 지금은 자살 생각을 안 한다는 것 자체는 좋다. 그러나 지금은 안 한다는 말은 이전에는 했다는 말이다. 거기에 대해 물어야 한다. 가장 최근에 자살을 생각한 게 언제였는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제로 자살 시도를 했는지, 자살 생각을 그 이전에도 했었는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심각하게 했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자살할 생각이었는지 등의 질문이다. 또한 안나 양의 선생님이 처음 심각하게 생각했던 팔과 허벅지의 상처도 확인해야 한다. 그 상처는 누가, 어쩌다가 낸 것인지?
긴 소매와 긴 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상처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담자는 그 상처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을 했고, 안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겨우 내뱉었다. “그건 제가 그런거에요.” 이렇게 말하는 안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룩 떨어진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다.
내담자가 자해를 할 때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무척 고통스러워서 그 고통을 잊고자 자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그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며 수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상담자 말의 어조와 목소리, 표정, 깊은 호흡, 따뜻한 눈빛 등도 중요하다. 그리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물어봐 준다. “왜 그렇게 했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안나 양의 사연과 상담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계속된다.
송경화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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