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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정 박사의 ADHD 이해하기] ADHD 어린이의 발달 과정과 가족 치료 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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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3-18 | 조회조회수 : 4,0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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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만 둘을 두었던 한 친구가 세 번째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이 아이는 임신 기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출산도 수월하게 했다. 또한 남자 아이치고는 성장도 빨라 한 살이 되기 전에 벌써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은 느려서 두세 살이 돼서야 겨우 한두 마디 말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보통 아이들에 비해서 어떤 것은 발달이 훨씬 빠르고, 어떤 분야는 발달 속도가 아주 느린 편이었다. 


아이는 밖에서 노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되어도 집에 오려고 하지 않고 친구 집에 함께 가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엄마가 간신히 달래서 집에 와도, 저녁 식사 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식사를 하는 적이 없었다. 장난감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고, 온 몸을 계속해서 움직여 댔다. 가족들이 식탁에서 대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는 식사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1초라도 빨리 일어나 친구와 다시 놀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이의 시중을 드느라 쉴 틈이 없었던 내 친구는 기발한 착상을 했다. 아이가 친구와 같이 그 집에 가는 것을 막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오히려 쌀과 반찬거리를 아이 친구 집에 미리 갖다 주고 그 집에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도록 했다. 


아이의 친구 어머니 말에 따르면 아이는 얌전히 앉아 그 집 세 남자 형제들이 먹는 것을 지켜 보며, 자기 음식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환경(novelty)이 흥분을 불러 일으키고, 새로운 사람들(친구 가족)이 자기에게 관심 보이는 것이 ’상(reward)’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음에 틀림없다.


어느 날, 이 사내 녀석은 늘 하던 대로 큰길로 튀어 나갔다. 물론 길을 건널 때 좌우를 잘 살피라는 엄마의 말은 전혀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 동네에 새로 이사온 사람의 이삿짐 차에 부딪친 것은 찰나의 일이었다. 다행히 트럭기사가 급정거하여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이것이 그의 과잉행동 증상과 충동성, 생각하기 전에 행동부터 하는 문제가 야기된 첫 번째 큰 사고였다. 


녀석은 학교에 가노라면 친구와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집에 오는 것을 한껏 거부하곤 했다. 반면 아침에는 깨워서 학교에 데리고 가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러니까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는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다. 우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못견뎌해서 5-10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는 십여 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내 친구는 자주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상의하는 한편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했다. 선생님도 아이가 수업을 방해하려는 의도를 갖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어떤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아이 엄마는 선생님의 조언을 따라 코치 겸 가정교사를 두기로 했다. 숙제는 물론 감정 조절이나 반응 제압 등의 집행 기능 발전을 도와 주도록 한 것이다. 내 친구는 4학년이 된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첫 걸음임을 눈치챈 터였다. 


아들이 어렸을 때 친구 집에 음식을 조달해 주는 것으로 아이의 영양 상태를 지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함을 느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의 가정교사는 농구 선수로서 스포츠에 능했고 친구 관계도 원활한 대학생이라, 누나들만 있고 형이 없었던 사춘기 남자아이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간신히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이제 틴에이저가 된 녀석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중고등학생은 누구나 교복을 입어야했다. 그는 1970-80년대 엄격한 학교 규율을, 한국 사회의 규범을 제멋대로 깨부셨다. 이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튀는 옷, 그리고 멋진 옷들이 필요했다. 아이는 허락도 없이 아버지 옷을 빌려(?) 입고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그와 아버지와의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심한 ADHD 증상을 가진 듯했고, 자기 자신 위주로 사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의 화신처럼 보이는 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아는 사람도 없었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다. 내 친구는 아들이 아버지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 올 때마다 체벌은 물론 집안이 온통 전쟁터로 변하는 것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는 다른 산만증 환자들처럼 과거 잘못에 대한 결과(consequence)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혼이 난 다음 날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그 때마다 체벌이 뒤따랐다. 이렇게 가족 전체의 평화는 깨어져 가고 있었다.


성숙한 사고능력을 가진 아버지라면 아이와 단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해서 아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아버지의 옷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파악해 보려는 노력을 해 봤을 것이다. 아니면 아이와 함께 나가서 새 옷을 한 벌 사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그런 인격적인 존중을 받은 적이 없었다. 더구나 그에게 학교나 사회가 규범으로 정한 것(학생은 교복만 입어야 한다는)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따라야만 하는 것이고, 자식은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절대 복종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사연을 들으면서도 내가 직접 친구를 도와주지 못했던 이유는 1970년 경에 미국에서 정신과 수련을 받은 우리조차 ADHD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1994년에 편찬된 "DSM 4 TR"에 명시된 ADHD와 ADD에 대한 진단기준 및 통계열람은 진단기준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 많이 발달된 뇌 연구 결과와 각성제와 항우울제를 사용하여 치료에 성공한 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나는 내 친구의 아들이 심한 ADHD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ADHD라는 병이 많이 알려진 지 겨우 이삼십 년밖에 안 됐어. 지금 미국에서도 이 아이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물질의 불균형 상태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건 병도 아닌데 제약회사와 의사들이 짜고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해. 이 병의 특징은 아이들이 자기 또래들에 비해서 2-3살 정도 어리게 행동하고, 주의 집중을 못하고, 행동이나 감정 표현이 충동적이고 주위 사람들을 방해하는 거야. 많은 어른들이 ‘그러니까 아이들이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또래보다 2-3살 정도 떨어진다고 생각해봐. 그 아이가 학교나 교회에 가서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다면 누가 그 애와 친구가 되겠니? 이런 문제가 계속 되다 보면 아이는 ‘왜 남들이 나를 싫어할까?’, 아니면 ‘나는 바보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는데 그런 감정이 내부로 향하면 우울증세나 불안감이 높아지게 되고, 외부로 향하면 불량아가 되거나 갱단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 또한 술이나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범죄 행동으로 갈 가능성도 많아질거야. 그러다 보면 자살도 많아지고……. 


이 병은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부모가 잘못 길러서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야. 네가 시어머니에게서 들은 바로는 네 남편이나 시아버지가 별 이유도 없이 화를 잘 내고 정서 변화가 많은 반면, 머리는 비상해서 사업도 성공했고, 끼도 많은 분들이라고 했지? 이 병은 후손에게 대를 이어 유전되는데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2-3배 많아. 여자아이들의 경우, 주의 집중을 잘 못하거나 시시때때로 공상에 잠기는 증세가 가장 흔한 반면, 행동이 부산하거나 충동성을 보이는 경우는 별로 없어. 하긴 과잉 행동하던 남자아이들도 성인이 되면 과잉 행동이나 충동성이 많이 줄고 그 대신에 다른 문제들, 예를 들면 재미없는 일은 피하거나, 일을 시작하더라도 끝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또한 일을 체계 있게 하거나 세밀하게 검토하여 마무리하는 대신, 다른 재미있는 것이 있나 두리번거리고 찾아 나서지. 지금 네 아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니?”


“아들은 친구 소개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 시골에 있는 생산 공장에 내려가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며칠씩 같이 지내다 올라오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지. 만일 사무실에 앉아서 꼼짝 못하고 컴퓨터만 보면서 일을 해야 한다면 하루 만에 뛰쳐 나왔을 거야. 이 장소, 저 장소로 옮겨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니 지루해질 틈이 없고, 노동자들과 먹고 자며 고락을 같이 하니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많지 않단다.” <계속>


- 수잔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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