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 ㅡ 우리는 실수를 하고 있지 않나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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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ㅡ 우리는 실수를 하고 있지 않나요? (1)
By Earnest Gentile
주님의 날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계 1:10). 그리고 그 음성이 말했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계 4:1). 요한은 응하였고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몰입되었습니다(그는 육체적으로 무아지경의 상태에 있었으며 문자 그대로 그의 몸이 천국에 갔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저자의 의견). 제일 먼저 그의 주의를 사로잡은 것은 하나님의 보좌였습니다. 그는 즉시 그가 경험했던 그 어떤 것과는 다른 임재와 분위기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모든 것은 각각의 삶의 환경이 있습니다. 고기는 물이라는 환경에서 살고 인간은 공기의 환경 속에서 삽니다. 하나님은 찬양과 경배의 환경에 거하십니다. 바다가 고기에게 최적의 환경이고 인간은 신선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을 때 제일 편안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이 찬양과 경배의 환경 가운데 지속되는 것을 택하셨습니다. 생물들과 천군 천사들과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끊임없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환희에 넘치는 찬양의 분위기를 계속하여 분출시키는 일에 동참합니다. 요한은 바로 이런 분위기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요한의 실수
제 생각에는 모든 사도 가운데 요한보다 더 예배의 심령을 가진 사람을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었던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요한에 대하여 믿기 어려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19장과 20장에서 일어났습니다. 요한은 하늘의 분위기의 감동과 권능 가운데서 천사에게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장엄한 예배의 신령한 분위기에 있으면서도 예배의 대상을 잘못 택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몰라도 요한이 어떻게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단 말입니까?
흥미로운 것은 그 일이 계시록이 끝날 무렵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은 잊지 못할 엄청난 천둥소리와 같은 찬양을 담고 있습니다. 19장에서 우리는 거듭되는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하라)!”와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명령문입니다.
요한이 천사를 경배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계 19:10). 그런데도 요한이 두 번째 실수했을 때 계시록 22:9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명령이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요한이 하늘에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다면 우리도 예배에서 어쩌면 몇 번이고 실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감히 충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동의하세요? 누구든 예배를 올바로 드리지 못한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누구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우리들의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를 바로잡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흐름의 교환
하늘에서 생물들은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명은 영원한 활동입니다. 즉 일단 그것을 소유하면 결코 죽지 않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하늘의 예배와 찬양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지속적으로 칭송된다는 점에서 영구운동(perpetual motion)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상호적(reciprocal)이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찬양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영광의 물결 안에서 방출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흐름(the lifeflow of God)을 끊임없이 주고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들어갈 하늘나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를 것입니다. 실제로 하늘나라의 차원은 매우 전조적 탁월성(prophetic excellence) 가운데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즉시로 서로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생각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교회에서도 이치는 어느 정도 같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그 생명 흐름의 교환과 성령 은사의 방출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이 일반적인 교회의 예배와 행사 가운데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보다는 행사(function)에 더 초점을 두지 않았을까요?
의식과 성찬식은 분명히 성경적입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의 프로그램과 예식에 의해 수용될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주님을 위한 여지가 없습니다. 주님이 태어나셨을 때 여관엔 그를 위한 자리가 없었는데 그분은 여전히 그 문제를 갖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너무 제도화되어 있어서 그는 자신의 백성 가운데 자연스럽게 들어오실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왕의 예복을 입고 들어오셨다면 우리는 더 주의를 기울였겠죠,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그는 우리의 예배가 신령(in spirit, 요 4:24)으로 드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의 중심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에 집중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백성들의 영혼의 흐름과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성령의 흐름이 있도록,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방출되고 그는 우리 안에서 공개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하늘에서는 이 일이 가장 탁월한 방법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 위에서도, 예배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표제 구절인 시 22:3은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보좌에 옹립되신)” 우리의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경배로 분위기를 채울 때 우리의 예배는 그야말로 주께서 거하기를 기뻐하시는 보좌를 만듭니다. 히 2:12은 시 22편을 인용하여 성자께서 교회의 회중 가운데 오셔서 찬송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께서는 우리가 그를 예배할 때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교회의 왕께서는 오셔서 보좌에 앉으셔서 그의 언명(declarations)과 강력한 말씀을 위엄있게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주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마련함으로 인하여 치유와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고 찾으시는 오직 한가지는 예배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분은 십계명을 주셨을 때처럼 우리가 떨며 땅에 엎드릴 때까지 명령하시고 지진과 불과 맹렬함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예배 가운데 그를 보좌에 옹립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저것을 하도록 섬김의 방법을 훈련받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각각의 장소에서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르다가 되고 마리아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형식과 함께 성령으로 예배하며 참 마음과 영혼의 생기를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쏟아놓지 않으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기계적이며 요한이 보았던 하늘의 수준과는 거리가 먼 메아리일 뿐일 것입니다. <계속>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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