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칼럼] 이런 분은 예수님과 함께 ‘자고 쉬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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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매일 매일이 결단에서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뭐 아주 작은 되풀이 되는 일의 결단도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리얼을 먹을까? 한식으로 미역국을 먹을까? 소금으로 이를 닦을까? 치약으로 닦고 가글을 할까? 넥타이는 붉은색? 아니면 푸른색으로 할까? 화장을 할까? 하지 말까? 스카프를 맬까? 그냥 나갈까? 뭐 이런 등등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소한 결정은 뭐 그리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생과 사’를 가를 만큼 ‘심히 고민되고 죽을 지경’으로 고통스러운 ‘결정의 과정’(decision making process)이 있습니다.
저는 24살 때 은혜받고 주의 종의 길을 갈까? 아니면 남들 다 부러워하고 있는 소위 철밥통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이것을 버릴까? 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 받을 기회가 왔을 때 받아? 말어? 일단 받으면 나는 세상과는 끝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일과는 끝인데... 최우선순위가 주님과 교회가 되어야 할 텐데... 뭐 이런 종류의 결정은 ‘생과 사’를 가릅니다.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 중에 늘 가까이 함께하신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질 때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셨는지, 묵상으로 기도하셨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과 사’를 가르는 기도를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기도하고 3명의 측근 제자들에게 오셨으나 잠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든 ‘결정의 과정’(decision making process)을 가지셨냐 하면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기도하고 오셨을 때도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나를 위하여 한시라도 깨어 함께 기도할 수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세 번째 기도하고 예수님은 ‘결단’을 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이때에도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거라, 쉬거라’ 왜 그러셨을까요?
결정을 위한 기도의 시간은 ‘고민되어 죽을 것 같은’ 고난의 과정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싶습니다. 그러나 기도 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죽기를 결정하신 예수님에게는 더 이상의 고민과 죽을 것 같은 심정 대신 평안과 능력과 소망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자 이제는 자고 쉬자.’ 자신을 잡으러 오는 원수들 앞에서도 태연하셨고 평안하셨고 의연하셨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결단을 하십시오. 그런 분들은 평안합니다. 자고 쉽니다.
호성기 목사(필라 안디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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