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정 박사의 ADHD 이해하기] 변호사가 된 어느 소녀의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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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파노라마 시티 카이저 병원(Panorama City Kaiser)은 로스엔젤레스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 병원은 남가주 소재 카이저 병원들 중에서 샌퍼난도 밸리에 있는 또 하나의 카이저 병원 우드랜드 힐(Woodland Hill Kaiser)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데 약 300명의 파트너 의사들이 함께 일한다. 파트너 의사들은 대개 기존의 파트너 의사들이 투표로 선정하기 때문에 대개 이름은 알고 지낸다. 나는 소아나 청소년을 주로 치료하는 관계로 소아과 의사들과 특히 친분이 깊은 편이다.
어느 날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닥터 세라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어젯밤에 입원한 12세의 소녀를 빨리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급성 복통으로 응급실로 왔는데 의사가 처음엔 맹장염을 의심해서 일단 피검사를 했어요. 그런데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라 우선 진통시킨 후 정맥 주사를 놓아 수면을 취하게 했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 통증이 완전히 없어졌더군요. 혹시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닌지 닥터 정께서 봐 주시겠어요?”
환자는 병실로 찾아간 나를 순순히 맞아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묻는 대로 잘 대답해 주었다. 그녀는 세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고, 이곳에서 태어난 여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목사인데 미국 교회건물을 빌려 쓰는 작은 한국인 교회를 이끌고 계신 지 꽤 오래 되었단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요!”라고 말하며 소녀가 울먹거렸다. “그래서 너도 마음이 아팠겠구나. 그런데 어떤 일로 아빠가 그토록 불쌍하게 느껴졌니?”
“우리 교회 사람들은 점심 식사 후 김치나 된장 국물들이 바닥에 흘러도 그대로 놓아둬요. 화장실도 너무 지저분하게 쓰고요. 그런 이유로 미국 교회 목사님이 아빠를 야단치는 일이 자주 있어요. 저는 왜 우리 교인들이 아빠를 도와주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저라도 아빠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면서 소녀는 드디어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했니?”
“아빠는 제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즐겁게 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번 학기말 시험을 잘 보겠노라 다짐하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험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자꾸 딴 생각이 나고, 집중을 못하겠고, 걱정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잠도 못 자고,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어제 수학 시험을 보았는데 결과가 너무 나쁘게 나왔어요. 저 자신이 너무 미웠어요.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방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는데 직장에서 돌아오신 엄마가 저를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요.”
소녀의 어머니는 작은 옷가게를 경영하면서 남편 내조와 두 아이 양육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전형적인 이민 1세 여인이었다. “아빠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라, 어른들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타일러도, 쉽게 상처를 받네요. 6학년이 된 후부터는 숙제할 때나, 공부시간에 집중이 안되서 본인 스스로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소녀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성장 과정도 별 문제 없이 정상적이었다고 했다. 미국에 온 후 유치원에 가서 처음에는 언어 때문에 고생하는 듯했으나 금방 친구도 사귀고 적응을 잘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학업 성적은 항상 좋았으나 가끔 공부 시간에 잡담을 많이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옆의 학생을 도와주느라 생긴 일이라고 했다. “분명 A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B를 받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소녀의 아버지는 웃음을 지으시며, “나도 어릴 때 똑같은 이야기를 선생님에게서 들었다”고 하셨단다. 아버지는 학교 성적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작문 실력은 특출났고, 고교와 대학에 진학해서는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6학년부터 중학교로 올라가는데, 환경이 많이 바뀌어 적응하기 힘들었나 봐요. 갑자기 한 명의 선생님에게 배우는 대신 과목마다 다른 선생님을 찾아서 교실을 옮겨 다니는 것도 큰 스트레스였지요. 교실을 잘못 찾아가서 지각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지요. 아마 딴 생각을 하느라 집중을 못해서였겠지요. 그러다 보니 본인에 대한 분노도 생기고, 작은 일로도 엄마 아빠와 부딪치는 일이 잦아졌어요. 저희는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심도 생기고, 정서 불안으로 우울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는구나 생각만 했지, 이렇게 심한지는 몰랐어요.”
가족력을 조사해 보니 시아버지는 평소에 화를 잘내고, 술도 과도하게 드시는 편이었는데, 참을성이 없는 분이셨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사업수단은 좋아서 가족들이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두 번째 부인을 얻으면서 가정이 파괴되자 남편은 미국 이민을 결심하고,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이전에 좋아하던 술도 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지만하 워낙 예민한 성격인데다 우울 증상이 심하다고 했다. 어쨌던 소녀는 우선 소아과 병실에서 일단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간 후 외래로 나를 찾아 오기로 했다. <계속>
- 수잔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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