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Refreshing 꽃은 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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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엔 산과 물을 보는 안목, 더 나아가 삶을 보는 안목에 관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산과 물을 멀리서 겉으로만 보면 그저 산과 물일 뿐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평온해 보이는 그 산과 물속에서는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런 피 튀기는 생존경쟁 속에서도 암수가 짝을 짓고 생명이 탄생하는 신비, 새끼를 향한 어미의 목숨을 건 모성애, 또 그렇게 태어난 생명이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처절한 일들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보고 체험한 후 거기서 나와 다시 산과 물을 보면 그것은 예전에 보던 그 산과 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삶을 보는 안목이 변한 것입니다.
예전에 목회할 때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교인들을 겉으로 보며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계시는구나’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들이 사는 집을 방문해 보면 문제없는 집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는 목사인 내 문제가 되어 그 고통의 터널을 그들과 동행합니다.
위암 말기의 집사를 40일간 매일 찾아가 기도해주면서 진통이 심한 날은 함께 밤을 지새우며 그 고통을 나누기도 했으며, 중학생 아들이 동네 아이들과 싸우다가 권총으로 상대방 아이를 쏴 죽여 초상집이 된 가정을 찾아가 그 젊은 부모를 끌어안고 함께 울면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홀어머니로 살면서 애지중지 키운 딸이 대학에 들어가 처음 얻은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집을 찾아가 마치 내가 죄인 된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오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목사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고, 교회 장로님의 사랑하는 딸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병원에서 임종 예배를 드리면서 ‘왜 이렇게 착하고 신앙 좋은 아이를 일찍 데려가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난 그들을 보며, 또 끊임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년 반 전 목회를 끝내면서 난 이제야 비로소 남의 문제들을 껴안고 사는 일에서 자유로워지는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꽃들이 나를 보면서, ‘우리들도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쿨러를 열고 멀리서 보면 멀쩡해 보이는 꽃들이 그 안에 들어가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모습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입니다.
디자이너들이 지나다니다가 옷으로 스쳐 목이 부러진 것, 다른 꽃을 통에서 꺼내다가 곁다리로 물에서 빠져나와 말라 죽어가는 것, 통 안에 물이 모두 말라버려 통째로 시들어 죽어가는 것, 한가운데 박혀 곰팡이가 슬어 다른 꽃들을 병들어 죽게 하면서도 용케 걸리지 않고 숨어있는 것, 물이 오염되어 회색빛 끈적끈적한 물로 변질되어 그 통 안에서 모두 병들어 죽어가는 것들, 불이 환한 곳에서는 계속 자라서 쓸모없이 되어진다고 불을 꺼달라는 꽃들... 등등 모두가 나를 보고 ‘우리가 문제가 많으니 잘 좀 돌보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 많은 꽃을 쿨러에서 전부 꺼내어 새 통에다 새 물로 갈아주고, 병든 것들은 버리고, 꽉 끼어있는 것들은 간격을 떼주어 숨통이 터지게 해주고, 밑동을 조금 잘라내어 다시 새 물을 잘 빨아들이게 해주고, 새로 정리하여 쿨러 안에 넣어주면 꽃들이 윤기가 나고 반짝거리면서 나를 보고 생글생글 웃습니다. 이것을 바로 ‘리프레싱’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린 시들고 병들어 죽어가는 수많은 꽃을 살리고 그 생명을 싱싱하게 유지해주어 자신의 몫을 충분히 감당하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문제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인 리프레싱을 통해 우리는 싱싱한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하며 귀하게 쓰임 받는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리프레싱을 한 장미꽃들이 반짝반짝 윤기를 띠며 방실방실 웃고 있습니다.
하루종일 고객들의 주문에 맞춰 디자인하느라 정신없이 꽃들을 통에서 뽑아내어 쓰다 보면 다른 종류의 꽃들이 같은 통 안에 마구 썩어 있고, 길고 짧은 줄기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그것이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쯤 되면 꽃의 모습만이 아니라 상태도 매우 안 좋아집니다. 또한 그 와중에 어떤 꽃들은 물에서 빠져나와 시들어 죽어가기도 하고, 곰팡이가 슬기도 하며, 어떤 꽃들은 이미 다 시들어 꽃잎이 물속으로 빠져있어 물을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통들을 모두 쿨러에서 끄집어내 이미 시들어 죽은 것들은 버리고, 속은 말짱한데 겉은 상한 잎들은 떼어내고, 줄기 밑동은 잘라준 후에 같은 종류들끼리 모아 꽃잎이 더 크게 피어나 못쓰게 되지 않도록 싸매어주고는 새 통에다 새 물로 갈아서 넣어주면 꽃들은 다시 싱싱한 모습으로 살아나 새롭게 쓰임 받을 준비를 합니다.
리프레싱이 비록 귀찮고 복잡하긴 해도 꽃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생명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힘없이 늘어졌던 꽃들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난 모습을 보는 것이 마냥 기쁘고 행복합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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