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가 되려하지 말고 격려하는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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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대학교를 들어가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글을 잘 쓰는 아이인데도 대학교에 가서 에세이 숙제를 하는 것을 참 힘들어한다. 다행히 한국에서 내가 공부하면서 영어 교수님에게 글쓰기에 관한 기초 훈련을 받아서 미국에서 학업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숙제를 도와주고 하면서 나도 글 쓰는 것에 대하여 더 많이 배웠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대학교에까지 가서 숙제를 하면서 아빠에게 보여주고 도움을 받으려고 하니 참 대견하다.
아무래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글을 쓰는 것 자체는 딸아이를 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단지 개념을 정리하고 글의 구조를 잡고 하는 것을 조금 도와줄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을 도와주다가 보면 내가 자꾸 가르치려고 하게 된다. 그리고 좀 더 좋은 글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조금 더 조금 더 푸시하게 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자꾸 지적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가 잠시 생각을 해보니까 이것은 나의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공부하고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해 나아가는데 아빠한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격려인 것이다.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다고 하는 것이 필요하지 내가 조금 더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하여 부족한 부분들을 지적하는 것이 결국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의 글을 도와주면서 이슈가 아이의 교육보다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내가 이것을 할 수 있다는 대견함에 자꾸 빠져가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지도자로서 영향력이 넓어져 가면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고 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기에 내가 당신에게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성공을 했어도 가르치는 권한이 생기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너희는 “선생이 되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 가르치는 자가 되지말고 어떤 자가 되어야 할까? 바로 격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아마 진리를 많이 알아서 잘 가르치는 사람 앞에 서면 우리는 “아! 참 이 사람은 훌륭하구나”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잘 격려해주는 사람을 통해서는 우리가 “와! 내가 이렇게 훌륭한 삶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만남일까?
많은 경우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조언을 받고 위로를 얻으려고 한다. 그때 쉽게 발동하는 것은 분석력이다. 문제가 무엇인지 해결책이 무엇인지 열심히 연구하고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어려움을 풀고 헤쳐 나올 수 있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석력에 스스로가 감동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답이 바른 분석이 상대방이 그 상황 속에서 헤쳐 나가는 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상대방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고 혹시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이제 안다고 문제를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경우 그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분석이 아니라 격려일 것이다. 잘 될 것이라는 격려, 잘 할 수 있다는 격려이다. 분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어쩌면 현실을 외면하는 거짓처럼 생각될 수가 있다. 그냥 눈을 딱 감고 격려를 해 주어야 한다. 긍정적인 관점을 제공해 주고 낙관적인 관점을 제공해 주어야한다.
혹시 그런 관점이 내가 진실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되면 기도를 해주어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구하고 믿음을 갖고 상대방에게 잘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어라. 잘하고 있다고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고 격려해 주어라. 사실상 분석도 어렵고 힘든 것이지만 격려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모든 상황 가운데 긍정하고 낙관하고 또한 상대방의 삶에 대해서까지 그런 낙관과 긍정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미국 프로농구를 보면서 관심있게 보는 선수가 하나 있다. 드와이트 하워드라는 선수다. 한때 정말로 잘하던 선수이고 대표적인 선수였다. 소위 말해서 NBA 전체 스타였고 한때는 레이커스팀에서도 주축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실력이 줄고 나이도 먹고 NBA에서는 더이상 주전으로 뛰기 어려운 선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가 포기하지 않고 최소의 보상만을 받으면서 후보 선수 중에 하나로 열심히 뛰고 있다. 많이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지만 그 시간 정말로 열심히 뛰고 자기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다른 선수들이 잘할 수 있게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그 선수에 관심을 갖고 응원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 경험을 통하여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자꾸 가르치려고 하고 자기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부담스러워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면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잘 섬겨야 한다. 하워드 처럼하면 되는 것이다. 요사이 그가 점점 인정을 받고 시간을 조금씩 더 배정받는 것 같다. 아마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보다 한 걸음 더 움직여서 남이 잘 되도록 섬기는 사람,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신선묵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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