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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예배의 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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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05-26 | 조회조회수 : 6,1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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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노래로

   

우리들의 노래에서, 다윗의 장막에서처럼 찬양의 새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적을 넘어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5절과 6절에서 다윗은 환난 날에 기쁨의 제사, 즉 주님께 찬양의 노래를 부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승리를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들을 부를 때, 자신의 머리가 둘러선 원수들 위에 들릴 것(그들을 무찌를 것)을 분명히 기대하고 예상합니다. “그때에 나는 나를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면서, 머리를 높이 치켜들겠다.”

   

(시편 27편 5절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환난의 때에 여호와의 집에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환난을 만날 때 하나님의 덮어주시고 숨겨주시는 피난처가, 다윗이 은신처를 구했던 장막, 즉 주님의 집에 있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 있는 “기쁨의 제사”라는 단어들은 히브리 원문에서는 단 한 글자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단어 “테루아”(Terou’a)는 군인들이 전투를 시작하려 할 때 함성을 지르는 전쟁 외침이나 전투 외침으로 사용된 히브리어입니다. 이 구절에서 다윗은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사 55:4b)인 대장(captain)으로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전쟁으로 인도하며 전투의 외침, 즉 군대 행진곡(military march)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외침은 전쟁은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의 외침일 것입니다. 그것은 적에게 그들의 힘과 강함에 대한 두려움을 초래할 의도로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나의 계시를 주셨다고 믿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사들이 전쟁에 나갈 때 나타내는 승리의 자신감과 같은 확신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께 소리를 높여 찬양의 새 노래를 부르려고 올 때 그 찬양은 주님을 높이기 위해 주께 올라갈 뿐만 아니고 적에 대항하여도 전해진다는 것을 이해하였습니다. 사탄은 그 노래를 자기에게 대항하는 전쟁의 승리 함성으로 듣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자와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셔서, 뭇 사람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골 2:15). 이 구절의 “벗겨 버려진”(spoiled)이라는 단어는 “에크두오”에서 파생한 “아페크두오마이”라는 헬라어에서 온 것입니다. 에크두오(Ekduo)는 발가벗겨 버린다는 뜻입니다. 아페크두오마이(Apekuduomai)는 더 나가 가죽을 벗기고 박제하는 의미의 사냥 용어였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벗겨 버렸습니다. 그는 사탄의 옷을 벗기고 발가벗겨 놓았습니다. 그는 사탄의 숨통을 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게 하셨고 그에게 승리하셨습니다. 그 대적은 패배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의 새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군대의 전투의 환성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소리를 듣고 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의 군대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대치했습니다. 그리고 패하였습니다!


승리의 함성으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여리고성의 위대한 승리를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자신의 명령에 따라 함성을 지르도록 지시하고 그들이 함성을 울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성을 준 사건을 기록한 여호수아 6장 16절과 20절에서 21절을 주목하십시오. 이 구절에서 “외치다(shout)”로 번역된 단어는 역시 히브리어 “테루아(terrou’a)”입니다. 그들의 외침은 적군에 대한 전투의 함성이었고 그 무엇도 그들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유다 족속의 장정들은 절망적인 전투상황에서도 여호와 앞에서 함성을 울렸을 때의 능력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군이 둘러보니 앞뒤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유다 군이 함성을 지르고,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군 앞에서 치시니, 이스라엘 군이 유다 군 앞에서 도망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들을 구원하셨다”(대하 13:14-16). 유다는 피할 길이 없는 덫에 갇혀 있었으나, 그들이 하나님께 함성을 울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이 당할 확실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셨던 것입니다. 

   

시편 149편 6-9절은 믿는 자의 두 가지 방어무기로써 양날의 칼과 하나님께 드릴 찬양을 기술합니다. 이 두 개의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성도들은 적에게 복수하고 민족을 심판하며 왕들을 족쇄로 채우고 고관들을 쇠사슬로 묶어 버릴 것이라고 외칩니다. 제가 믿기는 이런 일들은 영적인 적에 대한 우리의 영적 전쟁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엡 6:12). 적의 능력은 파괴되었으며 우리의 손에 넘기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노래로, 외침으로 그리고 찬양과 경외의 음악으로 그를 높일 때마다, 그들은 적의 능력과 힘을 부수어 버리는 전쟁의 함성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온전히 사용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능력과 힘이 우리의 예배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순종과 찬양과 경배 속에서 순전한 제사장으로써 주 앞에 나아갈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권능과 효율성을 가지고 적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전쟁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찬양과 경배의 또 다른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예배에서 거룩한 손을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시 134:2).

   

우리는 출애굽기 17장 9-11절에서 전쟁 중의 예배에서 손을 들어 올리는 경우를 봅니다. 이 구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말렉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외칩니다. 11절은 모세의 손이 주 앞에서 들리어져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적을 이기다가 힘들어서 그의 손이 내려오기 시작하면 적군이 이기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손은 무거워지게 되고 예배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고 싶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록 아론과 후와 같은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손을 다시 들어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할 때 적은 뒤로 물러가고 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실패하고 선한 일을 하다가 지쳐서 낙심하게 되면 적은 우리를 엄습하게 되고 결과는 승리할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승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손을 들어 올려 주께서 적을 제압하도록 하십시다. <계속>


김영국 목사(음악목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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