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정 박사의 ADHD 이해하기] 변호사가 된 어느 소녀의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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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이 지난 후, 나는 외래로 병원을 찾은 소녀를 만났다. 엄마에 의하면 이전처럼 명랑하고 자신을 찾은 듯 보인다고 했다. 또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 한다고 했다.
“전에도 가끔 머리나 배가 아픈 적이 있었니?”라는 나의 질문에 소녀는 “네. 그런데 엄마나 아빠에게는 걱정하실까 봐 말을 안 했어요. 저는 특히 역사 시간이 너무 지루했어요. 그 시간엔 다른 공상이 떠올라 공부가 안되었고, 가끔은 낙제할까 봐 걱정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머리나 배가 아프곤 했지요. 중학교 오기 전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에요.”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행동 검사 질문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의 답변을 토대로 소녀에게 ADHD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소녀는 ‘부주의 형’이고, 과도 행동 장애나 충동성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병을 의심하지 않았던 듯했다. 게다가 지능이 뛰어났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적도 우수했다. 또한 남들을 잘 도와주는 지도자 역할도 했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나타나는 정서 변화를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정서 변화와 성호르몬 및 성장호르몬의 영향으로 왕성해진 감정의 노도를 제압시키기에는 전두엽의 기능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ADHD란 본래 전두엽을 강화시키는 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있는 증상이 아닌가! 마치 ‘발정난 개’처럼 사춘기 아이의 감정뇌(번연계라고도 불리며 모든 포유동물이 배가 고프거나, 몸이 아프거나, Fight or Flight의 스트레스 반응을 맡아 함으로서 생존을 가능케 하는 뇌)는 최고도로 항진되어 있는데, 이를 제압하고 조절해야 하는 전두엽이 제구실을 잘 못하고 있으니 소녀가 힘들었을 수밖에.
나는 소녀와 어머니에게 두뇌 모형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여기 초록색의 감정 뇌가 아주 머리의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보이지? 그리고 그 앞쪽에는 빨간색의 전두엽(prefrontal lobe)이 있는데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읽어볼래?” 소녀는 <그림>을 보며 전두엽의 기능을 큰 소리로 읽었다. “고도의 지적 기능. 집중, 계획, 판단, 감정의 표현, 창조, 감정 제압.”
“그러니까 제 감정을 조절하며 집중력과 계획성, 창조성, 판단력을 갖는 데 관여하고, 감정을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저의 전두엽에 도파민이 충분히 생성되지 않아서 제가 고생을 한 셈이군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거나, 재미가 없으면 도파민이 잘 생성되지 않는 체질을 선천적으로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는데,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떠들썩하거나 충동적이라 금방 발견되어서 일찌감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밖에서 보기에는 워낙 조용하고, 가끔 혼자서 공상이나 하니까 금방 발견이 안 되어서 십 대까지 가는 거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감정은 도저히 조절이 안 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전두엽은 도파민 부족 때문에 제구실을 못 하니 본인이 얼마나 힘들겠어?” 소녀와 엄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도와주어야 하나요?” 엄마가 질문했다.
“우선 식구들 모두가 큰 따님이 무엇 때문에 그동안 고생을 하다가 입원까지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아빠에게도 주의 산만 증세가 유전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 합병 증세로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올 가능성이 많습니다. 혹시 그런 증세가 나타나거나 계속되면 진단과 치료를 받으시면 됩니다. 부모님이 우울한 가정에서 자녀들은 고통을 받게 되니까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위주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우울해 보이면 대뜸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아니면 ‘왜 아버지는 나를 싫어하시나?’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저는 치료 방법으로 한 가지가 아닌 ‘복합적 방식’을 추천합니다.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인 방법 모두를 가능하면 빨리, 동시에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심리적인 문제 극복을 위해 상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감을 갖고, “I am OK.”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체적인 방법으로는, 우선 사춘기에 흔히 올 수 있는 빈혈, 갑상선 질환, 피부질환 등을 진단, 치료받고, 규칙적 운동과 건강한 식단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집안에 심장병 환자가 있거나, 본인에게 그런 과거력이 있었다면 심전도를 찍어 보고 결과에 따라 심장 전문의를 만나 보는 것도 좋겠지요. 또한 그동안 역사 시간이나 다른 몇몇 과목에서 집중이 안 되어 고생을 많이 한 경험이 있으니 작은 양의 각성제 약물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많은 분이 약물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시거나, 너무 안심하는 경우를 봅니다. 모든 약은 독과 같을 수 있으니 작은 양부터 시작해서 3~5일 간격으로 차차 양을 올리며 부작용 여부를 세밀하게 관찰하여 본인에게 적합한 양을 찾아내면 됩니다.
사회적 또는 환경적 치료는 환자가 속한 환경의 변화를 말합니다. 가정과 학교가 청소년에게는 중요한 곳이지만, 따님의 경우에는 교회의 역할도 아주 큰데, 가능하면 교회 청년부의 Big Sister or Big Brother 같은 역할 모델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외 활동의 폭도 늘려 아버지에 대한 과도한 감정이입을 예방하는 것은 어떨까요? 영적으로 나보다 더 강한 어떤 존재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도움이 되지만 사춘기에는 이런 신뢰에도 가끔 의심이 올 수 있지요. 자기 자신에 대한 identity마저 흔들리기 때문에 에릭슨(Eric Ericson)이라는 학자는 이 시기를 정체성 혼란(Identity Confusion)의 시기라고 불렀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두뇌는 계속 성숙해 간다는 사실이지요. 태어났을 때는 미숙했던 전두엽이 부모 교육, 학교 교육, 교회 교육, 사회 교육 등을 받으며 매일 성장을 하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25세 또는 30세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ADHD 증상도 많은 사람이 어른이 되며 좋아진다니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계속>
- 수잔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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