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정 박사의 ADHD 이해하기] 나의 첫 손자, 세종의 ADHD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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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은하가 북가주(Northern California)에 있는 버클리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공과대학(Engineering)에 가게 된 것은 아빠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남편은 수학과 물리학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집안 어른들의 강권으로 의과대학을 선택해야만 했다.
남편의 아버지는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 땅 함경도 선천을 떠나 부모님과 4명의 동생들 및 그들의 가족, 자신의 아내와 여섯 자녀 등 대가족을 부양하며 남산 중턱의 해방촌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셨다. 삼촌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다며 남편이 의과대학에 가도록 종용한 것이다. 아빠의 수학적 사고력과 호기심을 이어 받은 것일까? 은하는 아빠가 미적분 문제를 내주면 신이 나서 몰두하여 풀었고, 결국에는 정답을 찾아내어 아빠를 기쁘게 했다. 이것은 마취과 의사인 아빠가 새벽부터 수술실에서 일하다가 유치원에서 은하를 집으로 데려오곤 했던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두 사람 만의 특별한 재미였다.
대학에 간 지 2년 만에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아빠를 떠나보낸 은하에게 그 빈자리는 너무나 컸고 그녀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고국을 늘 그리워하던 아빠를 생각하며 은하가 한 일은 한인 노인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돕는 것이었다. 영어를 가르쳐 드리고, 시민권 시험 준비를 도와 드렸다. 휴학 후 집에 돌아와 있는 동안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시민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2년 후 버클리 캠퍼스로 돌아가서 만난 청년, 마이크가 “너처럼 수학 잘하는 여학생은 처음 보았다”라며 다가왔으나 교제하는 것은 거절하였다. 아빠가 원했던 ‘한국 남자’를 기다리며 핼로윈 파티를 하던 날,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자신이 입고 다니던 오래된 스웨터의 덜렁거리던 단추들이 모두 단단하게 잘 꿰메어져 있더란다. 공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느라고 정신없이 바빴을 파란 눈, 금발 머리의 마이크 솜씨였다. 어느 날 마이크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은하에게 결혼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반지 사는 것을 도와주세요.”
결혼 후 마이크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신혼 부부는 마이크의 새 직장이 있는 오레곤주, 포틀랜드(Portland)로 이사를 했다. 그 후 드디어 은하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임신 기간 동안 은하는 장문의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 남편과 의논 끝에 자연 분만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은하는 소아과 의사도 미리 정해 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나는 자연 분만의 의미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내가 큰 딸을 원주 기독 병원 분만실에서 출산했는데, 진통제나 마취약을 사용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가며 낳았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그것이 자연 분만의 의미였다.
나는 은하의 분만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포틀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대도시와 동떨어진 이곳 비행장은 외양간에서 볼듯한 Hay와 옥수수로 수수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이 도시의 자연 환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곳에서 나의 손자가 태어나서 첫 호흡을 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예비 부모인 은하네 부부가 출산할 곳이라며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잘 정리된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건물 안에 있는 침실 같은 방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장비가 숨겨져 있어서, 언제라도 수술실로 전환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산모가 20시간 이상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내 머릿 속에 산부인과 교과서에서 읽었던 온갖 합병증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산파가 아기를 받기로 되었다지만 나는 한 번도 산파를 본적이 없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어디엔가 대기 중이냐고 물어도 확실한 답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은하는 방 옆에 있는 큼직한 목욕탕 안에 들어가서 점점 심해지는 분만의 고통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것이 의사인 나의 눈에는 모든 것이 현대 의학과 너무 동떨어져 보였다. 의과 대학 시절에 겁이 많던 나는 수술이나 분만 실습 기회가 오면 우리 팀의 남학생들에게 배울 기회를 기꺼이 양보하곤 했었다.
다행히 아기가 무사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이크는 사진을 찍는다고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또 다른 분만 후 합병증인 심한 출혈이 염려되어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내가 그토록 걱정하던 분만 중 혹은 분만 후의 합병증은 생기지 않았다.
다음날 내가 은하의 병실을 찾아 갔을 때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자기 방에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화를 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아마 자기 부부의 결정에 대해 내가 불안해하고,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되었나보다 생각하며 되돌아 나왔다. 또는 분만 후 우울 증세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 일은 그렇게 지나갔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할 기회가 없었다. 서로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생명의 위험이 있는 위기 상황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있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한 ADHD를 갖고 있는 나와 은하는 이렇게 가슴 아픈 순간들을 수차례 경험한 바 있다. 앞으로도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또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수잔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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