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잊지 못할 작은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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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라고 하는 곳은 꽤 부유한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시니어커뮤니티(Assisted Living Community)입니다.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 우리 꽃집에다 꽃을 의뢰하기도 하고, 또한 그곳에 계신 노인분들의 자녀들이 부모님께 보내는 꽃을 주문하기도 해서 나는 그곳을 자주 방문하는 편입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바바라라는 연세 든 노인이 100세 생신을 맞은 자기 고모님께 꽃을 보내달라는 주문을 해왔습니다. 이제 그날로 100세가 되시는 길모어 여사에게 잘 어울릴 만한 꽃을 만들어 웨스트민스터로 그녀를 찾아간 시간은 마침 저녁식사가 막 시작한 때였습니다.
간호사는 나를 그녀 앞으로 인도해주었는데, 그녀는 비록 100세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성미와 고상한 인품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바라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꽃과 함께 보내온 카드의 내용을 큰 소리로 읽어주고 돌아오려던 나는 웬지 그녀의 100회 생일이 그렇게 끝나면 너무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여러 노인들이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계셔서 난 그분들과 함께 작은 이벤트라도 해드려야겠다 생각하고는 큰 소리로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오늘이 여기 계신 길모어 여사의 100세 생신날입니다. 저와 함께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드립시다” 하고는 내가 먼저 선창을 하자 모두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어 ‘Happy Birthday to You’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길모어 여사를 축복해주고 생신축하꽃 전달식을 함으로 우린 작은 축제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땡큐를 연발했고, 축하파티가 끝난 후 나는 꽃을 그녀의 방으로 옮겨 놓으면서 잘 정돈된 그녀의 방과, 꽃과 함께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 등 여러 장면들을 사진에 담은 후 돌아와서는 바바라에게 그 사진들과 함께 우리가 가졌던 작은 생일파티 이야기를 텍스트로 보내주었습니다.
그것을 본 바바라는 너무 감격하여 그 텍스트를 전국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전송을 했고, 그 메시지에 감동받은 그들은 바바라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할 때 꽃은 그들을 대신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줍니다.
한국은 원체 가난하게 살아와서 먹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선물을 보낼 때에도 꽃보다는 먹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어쩌다 마음을 표시한다고 꽃을 보냈다가는 "왜 쓸데없이 이런데 돈을 낭비하느냐"고 핀잔을 듣기 십상입니다. 남편이 모처럼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한다고 꽃을 사들고 들어갔다가는, "아니 차라리 돈으로 주지 금방 시들어 죽을 꽃을 뭐하러 사가지고 오느냐"고 꾸중듣기 십상이라 다시는 꽃집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역에도 한국인들이 적지않게 살고 있지만 한국손님은 일년에 한둘 볼까 말까 합니다. 그러나 꽃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미국의 문화요, 오랜 세월 그들의 삶에 배인 일상이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꽃집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개월이 지나서 나는 길모어 여사의 근황이 궁금해 그녀가 옮겨진 방으로 찾아갔더니 그녀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100세 생일파티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내게 자기는 젊어서 변호사였고, 자기 남편도 변호사였다고 말해 주어서 나는 그녀에게서 풍기는 지성미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바바라에게서 고모가 돌아가셨으니 장례식 꽃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100세 생신 축하파티로 특별한 인연을 맺은 길모어 여사여서 그런지 매우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장례식 꽃을 만들어 장례식장에 가니 채플 앞쪽으로 놓여진 관 속에 누워 있는 그녀가 멀리서 보이는데 마치 그녀는 내게, "내 100세 생일 축하파티를 해줘서 고마워요. 내게 잊지 못할 아주 멋진 파티였어요"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정성이 내게 풍성한 추억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바바라가 고모인 길모어 여사에게 보낸 꽃은 흰색 장미와 수국, 그리고 스타게이저릴리와 그린들을 잘 조화해 만든 큼직한 사이즈의 디자인입니다. 꽃병을 길모어 여사의 방으로 들고 가자 그녀가 풍기는 깔끔한 인상처럼 방은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그런 것처럼 한쪽 테이블 위에는 그녀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부터 손자 손녀들의 사진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테이블 가운데 빈 공간을 찾아 꽃병을 놓으니 스타게이저릴리의 향내와 함께 방안이 더욱 밝고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꽃은 마치 빛처럼 자기가 있는 장소를 환하게 밝혀줍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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