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꽃가게 수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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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소수의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성장과 부흥, 쇠퇴와 몰락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늘날 수많은 소규모 retail business들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백화점들, 심지어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점포들을 소유한 대기업들까지도 소비 형태가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미 몰락했거나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한 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 어떤 기업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꽃 비즈니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른 수많은 종류의 retail business들과 같은 배에 탄 채 시대의 흐름이라는 물결을 따라 함께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Lake Ridge Florist는 이곳 Lake Ridge 지역에서 Tackett's Mill이라는 아주 위치가 좋은 쇼핑몰 안에 약 30여 년간 자리 잡고 있는 매우 전통 있는 꽃집입니다. 그동안 네 번 주인이 바뀌면서 우리가 다섯 번째 주인이 되었는데, 우리는 2대, 3대, 4대 주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꽃집의 역사와 꽃 비즈니스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인이었던 Wendy가 가게를 운영하던 1990년대와 그 이전에는 꽃가게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래 꽃가게를 운영하면서 비록 어깨너머로 배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디자이너의 일을 직접 하면서 전성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10여 년간 가게를 운영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팔고서는 은퇴 후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꽃가게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모두 긍정적이며 행복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반면에 세 번째 주인 Marlene은 디자이너가 아닌 사업가로서 은퇴한 남편과 함께 이 꽃집을 운영하며 사업을 크게 확장시키기는 했지만 꽃가게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할인판매의 볼륨을 높이기 위해 wire service의 3대 공룡기업들로부터 수많은 주문들을 의뢰받고 그것들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 명의 디자이너들과 드라이버들, 그리고 청소와 뒷정리를 담당하는 청소부까지 고용해 이 꽃가게를 중소기업의 규모로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나 막상 결산을 해보면 와이어서비스에서 떼어가는 엄청난 수수료와 함께 막대한 인건비, 재료비, 렌트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사업이었습니다. 그렇게 수익도, 보람도 없이 8년 정도 고생만 실컷 하다가 그녀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다음 주인인 바로 우리 전 주인에게 가게를 팔아넘긴 것이었습니다.
작년 2월, 두 번째로 맞은 발렌타인스데이의 바쁜 시기에 우리를 돕기 위해 온 그녀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은 그때 그 세 개의 wire service를 끊지 못한 것이다. 너희가 과감히 그것들을 끊어버리고 홀로서기를 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꽃가게를 인수하여 운영했던 2000년대 초반기는 이미 꽃 비즈니스가 사양길에 접어든 시기였습니다.
수많은 retail business들이 아마존의 등장으로 인해 몰락한 것처럼, flower business의 거대괴물인 wire service들의 횡포로 인해 수많은 꽃가게들이 곳곳에서 속속 문을 닫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거기에다가 언젠가부터인지는 몰라도 크고 작은 모든 슈퍼마켓들을 비롯해 월마트와 타겟 같은 대형매장들, 그리고 심지어 약국에서까지도 꽃을 팔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여서 꽃가게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이익이 적더라도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는 기업의 속성 때문인지 아니면 매장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데 도움이 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꽃가게에는 또 다른 악재가 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객들이 찾아와 꽃을 주문하다가 꽃값이 얼마라고 하면, ‘저기 마켓에서는 절반 값이면 사는데 여기는 왜 이리 비싸냐’고 가버리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꽃의 신선도와 품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디자인의 가치와 품격은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어떤 꽃이든 꽃이면 그냥 다 같은 꽃이라고 생각하는 고객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자주 놀라곤 합니다.
4대째 주인인 바로 지난번 주인은 이런 모든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채 단지 막연한 꿈과 포부를 안고 꽃가게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젊은 컴퓨터 엔지니어로 연방정부의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꽃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부부 두 사람 다 꽃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으므로 꽃집을 운영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을 고용해야 했고, 배달이나 꽃을 다듬는 일조차도 주인이 하지 않고 사람들을 사용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일 년쯤 되어 정산을 해보니 예전 공무원 시절보다도 수입이 훨씬 더 줄어들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예전 직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은 한 시간이나 떨어진 먼 곳에 있고, 돌봐야 할 어린 자녀가 둘이나 있는데다가, 영어도 서툰 히스패닉 여인이 꽃가게 일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너무 힘에 부쳐 짜증이 나면 직원이나 손님이나 가릴 것 없이 싸워대는 바람에 새로운 고객들을 확보하기는커녕 단골들마저도 다 떨어져 나가고, 평가점수는 최하위로 추락하는 바람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거의 모든 주문을 수익성 없는 와이어서비스에 의존하여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4년 반이라는 힘든 시간을 버티면서 오직 가게를 처분할 생각만 하고 있던 그녀가 그런 가게를 찾아 헤매던 아내를 만났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구세주였던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도,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도 있지만 그녀와 그 전 주인이 꽃 비즈니스에 실패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꽃을 만들 줄 모르면서 꽃집을 운영했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할 줄 모르는 사업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100%입니다. 사람들을 고용해 일을 시키더라도 주인이 알면서 시키는 것과 모르고 시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 목회를 할 때 교회의 젊은 집사 부부가 베이글 가게를 인수하면서 10명의 종업원 중 5명을 내보내고도 충분히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보며 주인 부부 두 사람이 종업원 다섯 명 몫을 감당하는구나 하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모처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을 임시 고용한다면 디자이너 두 명에다 전화로 주문받는 사람, 그리고 드라이버에 청소하고 뒷정리하는 사람까지 최소한 다섯 명이 필요한데다가 주인의 마음으로 일할 사람도 없을 것이니 차라리 문을 닫고 가는 것이 훨씬 손해를 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꽃을 디자인할 줄 모르면서 꽃가게를 하는 것은 마치 식당 주인이 음식을 할 줄 모르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나, 목사가 설교를 할 줄 모르면서 목회하는 것과 같이 실패는 보장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결혼식이나 큰 이벤트들은 아주 포기해야 하고, 갑자기 들어오는 주문으로 인해 밤늦게나 이른 아침에 디자인을 하는 것은 주인이나 하지 종업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주인인 Wendy가 꽃 비즈니스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주인으로서 디자이너의 일을 직접 할 수 있었기 때문이요, 우리가 꽃가게 쇠퇴기와 수난 시대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 3, 4명의 몫을 혼자 감당하는 여주인과, 배달과 청소 등 잡다한 일들을 감당하는 머슴 같은 남자주인이 부부팀으로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들과 우리와 같은 소규모 retail 업체들이 시대의 흐름과 대기업들의 횡포 그리고 수많은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실력과 능력을 키워 강소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이며, 그 중심엔 고용인이 아닌 주인이 있어야만 합니다. 모든 retail business들처럼 꽃가게 수난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대재앙이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문제들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입니다.
문제 많고 시련도 끊이지 않는 목회에서 은퇴하고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도 조금씩 하면서 남은 삶을 즐기고 싶던 소박한 꿈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고, 지금 우리는 전쟁터 안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곳은 오직 공동묘지밖에는 없으며, 나는 아직 거기에 가고 싶지는 않으므로 앞에 닥친 문제들을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어느 노인이 젊은이에게, “내가 너처럼 젊으면 뭐든지 하겠다”라고 했더니, 옆에 누워있던 시체가 노인에게, “나는 너처럼 살아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라고 했답니다. 꽃가게 수난 시대의 한가운데 꽃가게 주인으로 서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살아있기에…….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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