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회중 찬송의 의미와 중요성
페이지 정보
본문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회중 찬송의 회복임을 상기시켜주는 글이라고 생각되어 올립니다. 21세기의 예배와 찬양의 갱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 중 하나가 찬양과 경배인데 과연 연약해진 회중 찬송의 회복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는지요? 오늘날의 예배와 찬양 사역자들, 그리고 교회의 제1 찬양대원인 모든 회중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론을 다룬 에베소서 1장이 교회의 목적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을 모든 성도가 찬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저자주]
회중 찬송의 의미와 중요성(The Significance of Congregational Singing)
Jubilate II: Church Music in Worship and Renewal
By Donald P. Hustad
예배는 “사람들의 일(the work of the people)”이므로, 교회의 중심적이며, 유일하게 필수적인 음악은 회중 찬송이라는 것은 거의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배에서의 노래는 성직자나 훈련된 예술가를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노래는 신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중대한 질문은 “당신은 목소리가 있습니까?”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노래가 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찬송은 그리스도인의 제자의식(discipleship)의 증거라고 단언한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에 누구든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업적에 대해 노래하고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그들은 믿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틴 루터 전 1000년 때와 같이 역사상 어떤 때에는, 교회의 “제1 찬양대”인 회중에게 노래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구경꾼의 예배를 선호하여 그들의 종교개혁의 유산을 등한시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비복음주의적 관행은 20세기의 고질적인 죄악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에 대하여 “연합되고 통합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회중 찬송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윌리엄 락(William Lock)은 그 “연합되고 통합하는” 개념을 잘 표현하였고, 또한 찬송가는 하나님의 계시임을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찬송가는 기본적으로 회중의 예배 책이다, 하나님의 세상과 성도들의 삶 가운데 그분이 누구시며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공동체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하나님의 가족이 한곳에 모일 때 사용하기 위한 책이다.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이외에는 청중이 없다. 그 어떤 인간 청취자들(human listeners)도 참석하지 않으며, 오직 함께 노래하는 참석자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주된 목표는 음악적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그 어떤 참가자도 따로 특별한 인정을 받지 않는다. 그리하여 회중은 한 마음과 뜻과 목소리로 행동하는 성령으로 채워진 생명체가 된다.”
실제로, 회중 찬송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또한 하나님에 대한 반응입니다, 왜냐하면 위대한 찬송가는 언제나 성경 말씀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성서신학의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릭 루틀리 (Erick Routley)가 말했던 것처럼.
“찬송가는 기본적으로, 회중이 그들의 경험을 선포하고 기독교의 교리를 공동체적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은 그녀가 “탁월성(transcendence)”이라고 부르는 예배의 본질적 요소는 비예식적인 교회에서 가장 자주 회중 찬송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가시적 상징을 최소한도로 사용하는 기독교 교파들은 그들의 예배에서 의도적으로 감각적인 매력을 벗겨 버렸지만, 대신 찬송가로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정적 암시를 풍성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예배드리는 마음의 초기 단계에서, 상징을 보는 것 대신에 찬송을 부르며 들음으로써 그들에게 필요한 감각적인 양식을 주는 것이다.”
복음주의적 탁월성에 대한 언더힐의 이해는, 제가 보기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의 참여와 그들의 경험의 특질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맨 먼저, 전 인격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노래하는 몸(the body in singing), 불리는 노래를 이해하는 마음과 생각(the mind), 그것을 느끼는 감정적 자아(the emotional self), 그리고 노래에 의해 변화된 의지(the will)가 그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경험은 시와 음악 모두에서 심미적 탁월성을 발견합니다. 즉 시가 가진 리듬의 감각적 효과와 시적인 운(문장)과 단어의 이미지, 그리고 시적 구조에서 심미적 탁월성을 발견하며, 또한 풍부한 목소리의 음과 멜로디-하모니-리듬, 그리고 아마 악기의 반주에서도 심미적 탁월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감정을 압도하는 그런 탁월성의 경험을 했습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중앙홀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Love Divine, All Loves Excelling 찬15)”을 블렌번(Welsh Christian Hymn tune)의 곡에 맞추어 노래하는 2,500명의 영국 목회자들과 동행하였을 때처럼, 혹은 영국 웨일스의 애버리스트위스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웰시의 회중 찬송 쿰브란 론다(CWM RHONDDA)를 들었을 때처럼, 혹은 한국 침례신학교 학생들과(느린 템포의 완전히 풍부한 성량의 목소리로 부른) 대전에 있는 신학교 채플에서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찬288)”를 함께 나누었을 때처럼.
물론, 모든 찬송이 다 그 기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잘못은 대개 미숙한 곡 선택과 ㅡ 잘 선택된 곡을 부적절한 시간에 부르는 것도 포함 ㅡ 또는 미숙한 인도와 연주에 있습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 이전글[다니엘의 꽃 이야기] 애스트로메리아(Alstromerias), 조연의 전성시대 21.07.23
- 다음글‘소확행’을 뛰어 넘어 ‘주확행’으로 사십시오 21.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