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제프 릴리 - 첫 데이트에서 결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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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중에는 Flowers나 Rose 또는 Lily와 같이 꽃에 관련된 성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을 한국 이름으로 바꾸어 부른다면 ‘꽃순이’ ‘백합 철수’ ‘장미 영희’ 등이 될 것입니다.
제프 릴리는 큰 키에 굵고 우렁찬 목소리,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지만, 얼굴은 아주 남자답게 잘생긴 미남형으로 Lily의 여성스러운 이미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 헐레벌떡 들어온 그는 ‘오늘이 첫 번째 데이트 날인데 약속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빨리 꽃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약속장소를 물어보니 우리 가게에서 약 40분쯤 떨어진 스태포드라는 곳인데 그때가 마침 퇴근 시간이라 빨리 가더라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도 값비싼 꽃을 사용한 고급 디자인을 원하는 그의 기호에 맞추어 아내는 최단 시간에 멋진 꽃을 만들어주었지만 이미 약속 시간은 지나버렸으므로 우리는 제프가 들고 들어가는 그 꽃을 보고 그녀의 마음이 부드러워져 첫 만남에 한 시간 이상이나 지각한 남자를 용서해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했던 우리에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제프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 두 번째 데이트에 가져갈 꽃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먼저의 경험을 살려 이번엔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하면서 지난번과 같은 아름답고 멋진 꽃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첫 번째 데이트에 성공한 것을 축하해주었고 또다시 그의 두 번째 데이트를 위한 꽃을 만들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수많은 고객 중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는 경우는 이름이 매우 특이하거나, 특별한 디자인의 꽃을 주문하거나 아니면 뜻깊은 사연이 있는 꽃을 만들어주었을 때인데 제프 릴리는 이 세 가지 경우가 모두 해당이 되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의 특별한 고객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도 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꽃을 주문하는 바람에 이번이 몇 번째 만남이며, 이번에는 어떤 꽃을 해 갔고, 이제 결혼이란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구나 하며 본의 아닌 레이다추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주문하는 간격이 길어지고 한동안 소식이 없으면 ‘이제 그녀와 끊어졌나? 제프를 다시 못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등등 몹시 궁금하면서도 우리가 먼저 전화를 걸어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시 그로부터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와, ‘이제 드디어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먼저 법정에서 결혼 서약과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고, 결혼식은 나중에 정식으로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첫날밤을 보낼 호텔방을 예약했으니 그녀가 방에 들어서면서부터 어디를 가든지 꽃을 볼 수 있도록 사방 곳곳에 꽃을 놓아달라’는 특별한 주문을 해왔습니다.
그런 주문을 받으면 아내의 눈빛이 반짝이며 그때부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디자인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수많은 꽃밭을 헤집고 다니며 머리와 가슴으로 구상한 것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통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합니다. 그렇게 만든 아름답고 창조적인 작품들을 차 안에 가득 실고 가서 우리는 그 호텔방을 멋지게 장식해주었고, 아내는 한술 더 떠서 침대 위에 장미꽃잎(petal)을 잔뜩 뿌려놓아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안 해 본 일들을 고객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지금까지 우린 무엇을 하고 살았지? 돈이 없으면 장미꽃잎이라도 침대에 뿌리면 되는데’라고 삭막하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후회하곤 합니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제프로부터는 소식이 끊어졌고, 주문은 다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꽃집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남녀가 만나 데이트에 열을 올릴 때 남자는 여자에게 열심히 꽃을 갖다 바치며 구애를 하지만 데이트가 끝남과 동시에 꽃을 바치는 일도 끝나며, 결혼에 골인하는 순간부터 꽃집에는 발을 끊는다는 것입니다. 데이트할 때 열심히 꽃을 보내다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해서 꽃을 보내는 기특한 남편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데이트하던 커플이 결혼에까지 골인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일처럼 몹시 기뻐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그들이 데이트는 아주 오~래 하고, 결혼은 아주 오~랜 후에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도 나이가 들면서 아내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면 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날, 발렌타인스데이나 마더스데이 때 다시 꽃을 보낼 것입니다.
훗날, 나이가 지긋이 든 제프가 그날이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집에 들어가다가 놀라서 Lake Ridge Florist에 헐레벌떡 들어와서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 새 주인에게, “시간이 급하니 멋진 디자인으로 빨리 좀 만들어달라”고 하면서 첫 데이트부터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자기와 동행해주었고, 자기들의 결혼을 그렇게 기뻐해 주었던 옛날 그 가게 주인이 생각날 것입니다. 난 그때가 되어도 우리의 특별한 고객이었던 제프 릴리를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이파리가 큰 심버디엄 올켙과 하늘하늘하고 가냘픈 델피니엄 올켙, 매그놀리아 넓은 잎에 검정색처럼 짙은 자주색 칼라릴리와 장미꽃들을 섞어 디자인한, 작지만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꽃이 그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결혼하기 전 그는 걸프렌드에게 줄 꽃을 주문하기 위해 자주 가게를 찾았던 단골고객이었지만 결혼한 후 그는 발길을 끊었고, 더 이상 그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제프의 아내가 된 그 여인이 낭만적이기보다는 실리적으로 되어 남편 제프에게 손을 내밀며, “꽃보다 돈!” 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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