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하나님을 조정하려는 자들에게 건네는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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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타로점, 점성술, 각종 마술과 강신술이 영화와 드라마를 도배하고 있습니다.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이러한 이교적 현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이를 두고 “사탄은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며, 이런 이교적 요소들과 전면전을 선포하는 크리스천 문화운동가들도 있습니다.
정작 우리가 던져야 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정말 위험한가?"
구약에서 하나님은 신접한 자와 점술을 매우 엄중하게 금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감각으로는 충격적일 만큼 강경합니다. “신접한 자와 박수는 반드시 죽일지니 돌로 치라"(레 20:27).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가증히 여기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무당과 점술사는 일상에 침투하여 신과 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을 모시되, 동시에 신을 다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생사화복을 위해 신을 불러내고, 달래고, 조정하며,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문제의식은 명확합니다. 인간이 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방의 신관을 심각한 신성모독(blasphemy)으로 여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불려 나오고, 인간의 욕망에 따라 작동하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대상이십니다. 하나님은 신접한 자들을 돌로 쳐서 멸하시기까지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신을 이용하는 종교가 아니라, 선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믿음의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이며, 조정이 아니라 순종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교회의 많은 사람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악마, 귀신, 강신술, 점성술이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천들이 실제로 더 자주 속고 있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내 생사화복을 위해 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교회 내부에는 우상숭배와 접신하는 점술적 사고가 넘쳐납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축복을 보장한다는 식의 주문 같은 메시지"
"십일조를 하면 반드시 물질의 복이 따라온다는 거래적 논리"
"특정 학습법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신앙 상품들"
하나님을 내 유익을 위해 조정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이방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는 행위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차라리 대놓고 귀신이 등장하고 악마가 현현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더 분별하기도 쉽고, 피하기도 쉽습니다.
진짜 교묘한 광명의 천사와 같이 교회에 침투한 문제는 그럴듯한 크리스천의 외양을 하고, 기도라는 이름으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 만연한 이런 우상숭배와 점술과 마술들입니다.
성경의 단어를 쓰지만 하나님의 뜻은 사라지고 인간의 욕망만 남아 있는 신앙,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복음처럼 보이지만, 정작 십자가가 빠져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조정하려 하지 말고 잠잠히 신뢰하십시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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