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둘째 아들 결혼식 – 꽃 배달과 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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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꽃가게를 하면 아들 결혼식에 꽃을 직접 만들어 배달해줄 수도 있고, 또 아빠가 목사라면 아들 결혼식에 주례를 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꽃 배달과 주례를 한 번에 둘 다 맡아서 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나는 평상시처럼 작업복을 입고 아내가 아들을 위해 특별한 정성을 기울여 만든 결혼식 꽃을 딜리버리 밴에 가득 실고서는 결혼식장으로 배달을 갔습니다.
식장으로 대여한 페어팩스의 아름다운 성전 곳곳에 꽃을 배치하는 작업을 끝내고,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작업복을 벗고 미리 준비해간 검정색 양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꽃 배달부에서 결혼식 주례자로 변신하는 것이 내게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신랑 아들과 신부 며느리가 앞에 서고, 나는 예식을 인도하면서 주례사 대신 그들을 위해 쓴 편지를 읽어주었습니다.
둘째 아들 John과 나는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아들은 교회와 학교에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릴 만큼 아주 똑똑한 아이였고, 집과 교회에서는 그 조그만 손으로 주보를 접으며 온갖 심부름도 하면서 아빠의 목회를 도와주어 난 그 아이가 믿음으로 잘 성장해서 앞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훌륭한 리더가 되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운동에 소질이 많은 아들은 공부보다는 길거리 아이들과 어울려 농구에 열을 쏟으며 돌아다니기에 바빴고, 아빠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아들을 캘리포니아에 떨쳐놓고 우리는 이곳 버지니아로 이사를 왔고, 아들은 부모의 감시를 떠나 자유분방한 삶을 마음껏 누리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만나면 나는 아들을 향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아들은 자기를 보는 아빠의 못마땅한 눈초리가 몹시 불편해 가능하면 아빠를 보지 않으려 했으므로 우리 둘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은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드는 데다 혼자 사는 것이 힘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돈 안 드는 엄마 아빠 집으로 기어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잠을 자는 아들의 생활방식을 나는 못 견뎌 했고, 아들도 그런 아빠의 눈총을 받으며 함께 지내는 것이 힘들어 어느 날 엄마에게 ‘여기에 다시는 안 올 것이며, 아빠하고는 하루도 같이 살지 않을 거야’라고 쓴소리를 내뱉으며 한 주일 만에 다시 캘리포니아로 가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살길이 막막한 아들은 얼마 후 사자 굴 속으로 들어오는 표정을 하며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난 이제 그 애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야단을 치고,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아들의 생활방식을 계속 책망하고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만 하기로 작정하고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안아주면서 ‘아빠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여전히 귀에 달려 있는 귀걸이와 낮에 자는 꼴이 보기 싫었지만 그래도 멀리 두고 걱정하는 것보다 가까이 두고 함께 사는 것이 돈도 안 들고 더 낫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아들을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들과의 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되었고, 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져 서로 마음을 열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아들은 어느새 UVA를 졸업했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여전히 밤에는 깨어있고 낮엔 자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지금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빠도, 대학도 바꾸지 못한 아들의 습관,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잠자는 그 습관이 회사에 들어간 바로 그날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때가 되면 해결될 일을 괜히 속을 태웠구나 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이 신기하고 기특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John, 너 정말 많이 변했다”고 하니까 그 애는 나에게, “아빠가 많이 변했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들이 변하기를 기다렸지만, 아들은 내가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린 그렇게 함께 변화되었고, 변화된 아들은 아주 믿음 좋고 예쁜 아내를 만나 변화된 아빠의 주례를 받으며 결혼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몇 번이나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우리의 화해와 승리 그리고 미래의 꿈을 담은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었습니다.
그날을 돌아보며 난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 사랑은 정죄보다 더 큰 능력이며, 꽃 배달과 결혼주례는 아주 죽이 잘 맞는 직업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이 글을 읽으신 분이 이후 언젠가 저의 둘째 아들 John을 만나서, “아! 네가 바로 그 John이구나”하면 눈치 빠른 그 애는 ‘아빠가 예전에는 나를 설교 예화로 써먹더니 이제는 어디에다가 내 얘기를 해서 저 사람이 저러나’하고 없어진 줄 알았던 상처가 다시 올라올 것이니 혹시라도 후에 만날 일이 있으면, ‘쟤가 걔구나’ 하고 혼자 조용히 넘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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