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떠나 보낸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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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반 동안 우리 꽃가게에서 디자인해 내보낸 꽃이 대략 6,000~6,500개 정도가 됩니다. 디자인한 꽃들을 들고 배달을 나가면서 사진을 좀 찍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침 일찍 가게에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퍼져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다시 가게로 가는 삶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우리는 주문이 들어온 꽃을 빨리 만들어 신속히 배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내게 사진 찍는 취미나 은사가 있었더라면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사진을 찍어 놓았겠지만, 그 분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내게 배달 나가는 꽃들의 사진을 일일이 찍어놓는다는 것은 또 다른 짐이요. 부담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자기가 디자인한 꽃들을 사진으로 옮겨 전송하는 것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큼 매우 싫어했습니다. 꽃의 향기와 함께 디자인의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모두 삭제해 버린 채 지극히 단조로운 평면의 무취 무미함으로 간단히 처리해버린 사진을 보냄으로 실물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것이 자부심 강한 디자이너들에게는 용납하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가끔 꽃을 주문하는 손님 중에는 자기가 보내는 꽃을 배달하기 전에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달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이유를 대며 가능하면 안 보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마지못해 보내주기도 하는데 그 사진을 보고 어떤 손님은 ‘Two dozen 장미를 주문했는데 왜 20개밖에 안 되느냐? 4개가 모자란다’고 항의 전화를 합니다. 사진을 보며 일일이 숫자를 세어본 것입니다. 그러면 사진으로는 안 보이는 뒤쪽으로도 장미들이 있다고 설명을 해주든지, 그래도 맘에 안내키면 뒤쪽과 위쪽으로 다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어야 합니다.
이래저래 아내는 자기가 디자인한 꽃을 손님들에게 사진으로 전송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합니다. 사진작가들이 찍어도 신경을 많이 쓰는 아내가 실물을 몹시 훼손시키는 사진을 찍는 내가 한쪽 끝부분이 잘려 나간 불량품 사진을 찍어 날려 보내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내가 이렇게 꽃 이야기를 쓰면서 아주 드물게 찍어놓았던 사진 몇 장을 보내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많이 보아야 했고,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한마디 하려고 해서 내가 먼저, “또 뭐라고 시비를 걸면 꽃 이야기를 자기에겐 안 보낼 거야”라고 협박을 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아내처럼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을 멀리서 보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지만 가까이서 함께 사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남기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극소수의 작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을 제외한 우리들 대부분은 그 소중한 이야기들과 장면들을 책이나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채 그냥 다 떠내려 보냈을 것입니다. 만일 그 이야기들을 다 기록해놓고, 그 장면들을 다 찍어놓았다면 우리가 모두 훌륭한 작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앞으로도 사진으로 많이 남기지는 않겠지만 우린 더욱 아름다운 디자인의 작품들을 만들어 그것이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보낸 그 수많은 꽃이 비록 사진으로 남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받은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소망과 행복을 선사하며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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