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정 박사의 ADHD 이해하기] 나의 첫 손자, 세종의 ADHD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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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 동안 산후조리를 도와준 후 세종이를 돌보기 위해 갓난아기를 안고 LA를 향해 떠났다. 집에는 나를 늘 편하게 해주시는 나의 엄마, 세종의 증조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포틀랜드 항공사 직원이 여행객의 나이가 8일 밖에 안 되었다며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한다. 내가 종이에 자필로 진단서를 써주고 서둘러서 보안검색대로 갔다.
차례를 기다리며 신을 벗고 서있는데, 화물을 받아주었던 여행사 직원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무래도 이걸 잘못 주신 것 같아서요”라며 100달러 지페 세 장을 내민다. 아무리 갓난아기 걱정에 신경이 집중되었다고 해도 어떻게 1달러 지폐와 100달러 지폐를 혼동할 수 있었을까. 나는 행여 내 ADHD 증상으로 인해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마이크는 결혼 전, 박사 과정을 하는 동안 새벽마다 시간을 내어 한글 공부를 했다. 한 번은 한글로 쓴 자신의 자전적 수필을 내게 가져와 보여준 적도 있다. 그는 한글을 배우며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나보다. 자신의 첫 아들의 이름을 ‘세종’이라고 지은 것이다. 세종이의 생일이 10월 8일인데, 한국 시간으로는 10월 9일, 바로 한글날인 것은 멋진 우연이라고나 해야 할까. 나는 학교에 가면 영어로 된 중간 이름(middle name)이 부르기 편하지 않겠냐고 걱정스러워했는데 “세종도 부르기 쉬워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오레곤 주를 떠나 북가주로 다시 이사온 후, 세종이는 샌호세(San Jose)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을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를 좋아하고, 친구도 아주 많았다. 은하가 둘째를 임신 중이던 어느 날, 마이크가 나와 나의 재혼한 남편, 닥터 김에게 조용히 물었다. “은하수에서 떨어지는 별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나요?” 닥터 김이 대답했다. “혜성이라고 한다네.” “그럼 둘째 아이 이름은 혜성이로 하겠어요.” 은하라는 이름이 은하수(galaxy)에서 온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은하는 세종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곧바로 그에게 ADHD 증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세종을 데리고 찾아간 소아 정신과의 젊고 패기가 넘치는 의사는 ADHD를 확진한 후 각성제를 처방해 주었다. 은하는 세종이의 담임선생님과 자주 연락을 하는 한편, 자신은 일 주일에 한 시간씩 세종이의 교실에 가서 미술을 가르치며 자원 봉사를 했다.
학년이 올라가며 세종이는 수업시간이나 숙제를 하는 동안 주의 집중이 잘 안 되어 힘들어 했다. 각성제를 쓰면 많이 도움이 되었으나 부작용으로 식욕이 심하게 저하되어 몇 번이나 약을 바꾸어야 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아서 성적도 잘 유지했고, 주위에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나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증상이 더 심해지는 듯했다.
어느 날 다니는 교회의 한 부모님으로부터 ADHD가 있는 사춘기 학생들을 위한 특수 중학교에 대해 듣게 되었다. 마침 그 집 아들도 그 학교로 전학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등교길 운전을 카풀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심한 산만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어느 어머니에 의해서 처음 세워졌다는 이 특수학교는 한 반에 8-9명의 학생들이 선생님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학습을 한다고 했다. 교실 바로 옆방에는 각종 운동 기구나 놀이용 공들이 비치된 ‘play room’이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하다가 너무 지루해지거나 집중이 힘들어지면 이 방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되돌아가서 수업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그 어머니가 다른 몇 명의 부모님들과 함께 교회 지하실에서 시작했던 학교인데, 이제는 학생 수도 많이 늘고, 평판도 좋아졌고, 좋은 운동장과 건물을 갖게 되었다.
세종이의 중학교 졸업식에 나는 은하의 초대를 받았다. 함박 미소를 머금은 8명의 틴에이저들이 파란색 가운을 걸친 채 무대 위에 자랑스레 앉아 있었다. 김밥을 만들어 간 은하와 나는 그들이 그린 그림과 행복함이 물씬 배어있는 비디오들을 봤고, 한 명씩 나와 인사하며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여학생이 많이 자란 대나무를 물병에 담긴 채로 들고 나와 한 선생님께 드렸다. “우리가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선생님이 주신 작은 대나무를 이만큼 크게 길렀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이 대나무를 선생님께 다시 드리니 저희들을 기억해 주세요.” 식이 끝난 후 우리는 부모들이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이들을 축하했다.
- 수잔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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