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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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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1-10-01 | 조회조회수 : 7,0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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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매일 죽음의 이야기를 듣고 지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교우의 친척 중 한 분이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주일 예배 후 찾아가 유가족을 위로해 주고 왔습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윤석현 목사님의 처남이 간밤에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미 알려 드린 것처럼, 그분은 버지니아의 Warsaw UMC에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네 자녀를 둔 37세의 젊은 목회자의 죽음으로 인해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한국에 사는 지인과 통화하는 중에 중학생 자녀가 우울증을 숨기고 있다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부모가 큰 충격과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또 출판 관계를 통해 알게 된 또 한 지인은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암이 발견되어 두 번째 항암 치료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50대 초반의 젊은 인재여서 마음이 참 안 좋았습니다. 한국 현대 교회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조용기 목사님의 부음도 들려 왔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은사를 드러내며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외쳤던 분이 모두가 가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지난 며칠 동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길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은 누구나 맞아야 할 운명입니다. 또한 죽음은 ‘언제든’ 나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인간의 수명은 상상할 수 없이 길어졌습니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수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 넣었던 전쟁도 줄어 들었습니다. 코비드 19 전염병이 수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갔지만, 과거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건과 사고 그리고 질병으로 인한 ‘이른 죽음’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구나 매일 하루 치의 생명을 받아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주어진 시간의 선물을 감사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져야만 알 수 있는 죽음의 진실도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죽음을 상실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상실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죽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서 잎이 하나 떨어졌을 때, 나무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실이지만 숲 전체로 보면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잎의 위치와 상태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눈으로 보면 죽음도 이와 같습니다.


문제는 어떤 상태로 바뀌느냐에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운명을 가져 오지 않는다는 것이 성서의 증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영원에 잇대어 사는 사람에게 죽음은 나비가 되기 위해 애벌레가 고치로 들어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혹시 때 이른 죽음을 만난다 해도 “아멘!”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런 믿음 위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봉 목사(와싱톤사귐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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