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목사의 음악목회 이야기] 양쪽 모두를 보세요!(Look Both Way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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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모두를 보세요!(Look Both Ways!)
- 찬양과 예배의 기획 원리 -
우리는 정확하게 “나 중심”과 “상대주의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즉, 지나친 헌신 없이도 영혼이 만족하도록 영원한 진리와의 신속하고 적절하며 관계성이 있는 경험과 만남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동예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가 자신의 솜씨와 맛과 요리를 전자레인지의 순발력으로 차려주는 식사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한 문화 속에서 진정한 예배를 인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도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quality)과 진실성은 개발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만남이 그 진실성과 함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거기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은 얼마나 더 필요하겠는지요! 진정한 예배는 진정한 순종과 제자도 정신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이 세상에서 역동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 중심의 마음으로 기꺼이 드리는 시간과 재능과 자원으로 말미암아 공동체에 대한 헌신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의해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백성을 예배로 인도하는 일은 도전적이며 신바람 나는 일인 동시에 또한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임재를 쉽게 말해 버립니다. 많은 사람은 목회자와 예배 인도자들이 회중을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도록 격려하고 자극하는 사람들로 알고 있습니다(사실 그게 우리들의 할 일이죠!). 그리하여 예배는 기쁨과 축제, 흥분과 짜릿함이 있는 곳으로, 믿음의 형제들과 불신자들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위 구도자를 염두에 둔 장소로 기술됩니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만 공부해 보면 하나님의 임재에 있다는 것은 경이로우며 또한 두렵고 놀라운 기막힌 경험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첫 대면에서 거룩한 땅에 서 있으니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출 3:5). 그 후에 모세가 바위틈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으므로 바위 사이에 숨어 가려 볼 수 없도록 함으로써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출 33:20-23). 또 이사야가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을 때(사 6:1-8), 그는 자신의 총체적인 죄악의 인식으로 인해 극한의 겸손에 사로잡혀 ‘내가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어 죽게 되었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4장과 5장에 기록된 사도 요한의 환상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묘사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들을 그 임재로 인도하는 데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그 만남의 본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경건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인도하는 찬양과 예배 인도자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비행기를 타고 특정 목적지까지 이동시킨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즉 찬양과 경배(예배) 인도의 원리를 비행사의 비행 원리에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비행사는 비행기가 이륙하여 비행한 후 착륙할 때까지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알아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계속 좌우로, 상하로, 그리고 앞과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피고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비행사들은 안전한 비행을 위해서 복잡한 전자장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예배의 영역으로 비행하는 우리는 성경과 역사적 통찰력으로, 늘 함께하셔서 기꺼이 도우시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예민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미래뿐 아니라 뒤를 잘 보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역사가 진정한 예배의 정의에 대한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많은 성실한 믿음의 사람들이 이 예배의 주제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깊이 생각하고 많은 책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적 주제가 거의 모든 문화와 예술 시대로부터 나온 음악 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데 실패하는 것은 단지 찬양과 예배를 위한 많은 자료들을 놓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미 저질러진 잘못들을 다시금 반복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우 아픈 생의 시련을 경험한 후 예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체험한 믿음의 사실들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노래와 시들을 써 왔습니다. 그들은 굶주림, 박해, 순교, 실망과 치명적인 질병, 의심의 시간과 믿음의 시련을 통과해 왔으며, 도움을 구하려고 성경을 읽고,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곰곰이 생각하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서 경험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운율시로 표현하였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이러한 믿음과 신학의 교훈들을 깊이 생각하고 반복하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그들의 인생에서 요구되는 바를 갈파하여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 즉 우리를 위하여 간직되어 온 모든 믿음의 유산들을 현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 소홀히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역사적 음악이 다 위대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의 시험을 견디어 온 것들은 우리가 신중히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뒤돌아보는 데 실패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앞을 바라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미래를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략적으로 어떻게 미지의 세계에 접근하는가를 잘 인식하도록 탐구해야 하며, 또한 현대 문명의 계기와 인용법과 소통의 기술을 인정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특히 음악의 영역에서의 전자 계통의 발전은 놀라운 일로서 음향 악기들과 전자음향 모방 기술, 파이프 오르간 수준의 전자 오르간과 신디사이저, 그리고 악기 디지털 합성(MIDI)과 음악을 만들어 내는 예술의 빠른 변화는 20세기 후반기에 일어나는 새로운 도전들입니다.
그리고 비록 대중음악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유래되지는 않았더라도 좋든 나쁘든 간에 그것은 직·간접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음악과 작사와 창작법의 변화에 관하여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세상은 점점 더 즉각적이고 복합적이며 더욱 단순화되어 가고 있어서 화음과 리듬과 가사의 복잡성에서 손쉬운 접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찬송가 가사의 신학적 진리의 전개를 한 절 한 절 노래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깊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혹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만일 멜로디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예술 전반의 품위와 완전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역사적 거작들의 마케팅은 지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이 직면한 과제와 도전입니다. 보편적 교회는 신앙과 실천의 더 깊은 문제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관하여 총체적으로 단순화된 하향 평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내 벅찬 삶을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세요”가 대부분의 우리의 찬양과 경배자들의 태도입니다!
교회의 앞날(전 세계적으로 박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깊이가 없다는 점을 검토해 볼 때, 앞을 바라보는 일은 두려운 일입니다.
또 하나의 미래를 보는 견해는 우리가 점차적으로 더욱 시각적이며 읽기를 싫어하는 사회 속에 살게 될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추는 설비와 조명이 예배에 더욱 필요하게 되었고, 드라마와 컴퓨터로 생성된 비디오, 대형 스크린, 조명 시스템과 연극화된 음악 작품들의 사용은 모두 현재와 미래의 찬양과 예배에 대한 의제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성경봉독과 교독은 잘 읽는 회중이 적어지기 때문에 더 어려워집니다. 역사적으로, 예배당에 있는 예술적 그림들(아이콘, 벽화, 천장 프레스코 등)은 문맹 이전 사회에서 성경의 진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용되었습니다. 문맹 이후의 행동강화의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 드러내는 일에 관련성이 있고 정확한 것을 추구하면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의 사용을 증가시켜야 합니다. 앞을 바라보는 것은 항상 뒤를 보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과 뒤 양쪽을 다 보아야 합니다.
필자 김영국 목사는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공부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이며 스승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 동안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지금은 저서와 번역, 그리고 웹사이트 매거진 “예배음악”(Worship Music)에서 음악목회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자신의 음악목회 경험과 사역을 나누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장로교출판사가 펴낸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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