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정 박사의 ADHD 이해하기] 나의 첫 손자, 세종의 ADHD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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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나는 세종이와 함께 스페인의 남부에 있는 강을 크루즈로 여행하며 가톨릭과 이슬람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문화를 접할 기회를 가진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ADHD 환자가 열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우선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분들이었다. "Road Scholar"라는 회사가 1975년부터 노인들을 위해 ‘값싸고, 공부를 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시작했단다. 주로 노인 부부나 개인 위주였지만 간혹 손주들과 함께 떠나는 특별 프로그램도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에 세종이의 동생인 혜성이와 텐트 생활을 하는 사파리 여행을 함께 가서 즐긴 적이 있다. 그 때 혜성이는 열 살이었는데 책임감이 강할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집중도 잘하고 늘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행 가방에 차곡차곡 챙겨 온 옷이나, 양말 등을 아침마다 계획한 대로 꺼내 입었고, 저녁에는 다시 잘 개어서 집어넣었다. 웬만한 어른보다 낫지 않았나 싶다(특히 나보다는).
몇 년간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나의 막내 아들 학용이는 주말이 되면 두 조카를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해서 시간을 보내 주었다. 훌라이 휘싱(fly fishing)을 가르쳐 주는가 하면 박물관에도 데려갔다. 아마도 누나에게 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혜성이는 자신의 여행 가방은 물론 세종이의 가방도 항상 준비를 해주었다고 한다.
마침내 나는 세종이와 함께 스페인의 남부, 특히 투우와 플라멩고 춤으로 유명한 안달루시아 지방을 크루즈로 도는 멋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이가 14살이 되는 해였다. 여행 첫 날부터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떠나는 공항에서부터 우리는 문제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세종이가 쉬지 않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일부러 현금을 주며 재미있는 책을 한 권 사서 읽는 것이 어떠겠냐고 등을 떠밀어 보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책 대신 전자제품의 일종인 듯한 물건을 사들고 와서, 다시 게임에 몰두하는 것 아닌가. 나는 무척 실망했다.
드디어 우리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Seville로 가서 다른 Road Schlar들과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려, 세관수속을 하려는데 세종이의 여권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이상 부딪치지 않는 길이라고 여겨서 믿고 간섭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나 보다.
옆에 있던 경찰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탔던 비행기 번호와 의자 위치를 알려 주었다. 다행히 경찰이 여권을 찾아다 주었지만, 우리는 그 후 더 큰 문제에 부딪쳤다. Seville로 떠나는 비행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나의 잘못이었다. 두 시간여 동안 마드리드 공항을 뛰어다니다가 결국 거액의 수수료를 따로 지불하고야 간신히 다른 회사의 작은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리던 그룹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이미 크루즈 배로 떠난 후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은하에게 당시의 해프닝을 말해 주었더니, “게임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Rule”이라고 말했으면 세종이가 내 말을 들었을 거란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이 시작되었다. 빡빡한 스케줄을 따라 다니느라 바빠지자 나와 세종이는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같이 할 파트너 가족들을 선정하는 것은 세종이의 몫이었다. 우리의 식사 파트너로 선택된 가정은 유타주에서 온 아름다운 가족이었다. 종교심이 깊은 백인 조부모와 필리핀에서 입양해 왔다는 동양계 손녀, 그리고 10대 손자들이었다.
세종이는 이 가족 말고도 다른 많은 가족들과 친해질 기회를 만들었는데 누구에게서나 인기가 높았다. 특히 어린 소년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행에 따라온 손주들의 연령은 12-16세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의 소녀들이 15-16세인데 반해 소년들은 12-14세가 많았다. 세종이는 연령대의 한 중간이었는데 남녀 관계없이 모든 10대들과 잘 어울렸다. 가끔 지방 특산물이 있는 곳에서는 쇼핑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죽 제품이 유명한 곳에 갔을 때다. 세종이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한 가게로 들어서더니 아름다운 여성용 가방을 들고 나왔다. 튼튼한 가죽에 정교한 무늬가 박혀있었고 크기도 적당한 가방이었다. “엄마에게 드릴 선물이에요”라고 말하자 모든 할머니들과 손자들이 그 가게로 몰려갔다. 나는 그 후 오랫 동안 은하가 그 가방을 애용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스페인 특유의 요리 실습을 할 시간도 있었다. 요리가 끝난 후에는 주위에 있는 시장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였다. 세종이의 쇼핑 실력을 인정한 나는 원하는 것을 사라고 10파운드를 손에 쥐어주고 먼저 배로 들어왔다. 그날 저녁 마가렛이라는 16세의 소녀가 먹다 남은 큼직한 소시지 손에 들고 우리 방을 찾아 왔다. “분명히 세종이 이걸 아무 데나 두었다가 잃어버릴 것 같아서 세종이 할머니에게 직접 가져왔어요.”
나중에 들어 보니 세종이는 시장 고기 가게에서 맛있는 소시지 한 덩어리를 9파운드에 샀댄다. 하도 맛이 좋아서 여럿이 나누어 먹었고 남은 소시지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평소에 얌전하고 말이 없던 마가렛은 이미 세종이의 습성을 알아채고 소시지를 발견하자마자 나에게 갖다주었던 것이다. 세종이에게 주어봤자 금방 다시 잃어버릴 듯하니까. 나는 심성이 고운 마가렛이 세종이를 잘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에 감동했다. 가능하면 여행이 끝난 후에도, 둘이 연락을 하고 만나게 하고 싶었지만 펜실베니아 주에 산다고 해서 단념을 했다. 그후로 나는 마가렛의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학용이가 여행 이야기를 듣더니 나에게 상담 치료를 받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여행 첫날 공항에서 세종이가 게임에 몰두한 것에 대해 보인 나의 반응이 분노 조절의 문제인 듯 보인다고 했다. 학용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좋은 충고였다. 이제 은퇴도 했으니, 가끔씩 솟구쳐 오르는 분노의 근원을 파악하고 이를 고칠 때가 된 듯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힘들고 화가 나는 감정들이 억눌려져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중에는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했던 엄마를 힘들게 하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말로 아픈 기억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야 될 때가 온 듯했다. 왜냐하면 ADHD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너무나 혹독했던 가정과 사회 환경으로 인해서 도움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니까.
- 수잔정 박사의 신간 "나와 나의 가족이 경험한 ADHD" 중에서 –
수잔 정 박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전 카이저병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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