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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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월 10일)은 우리의 모교회인 와싱톤한인교회가 70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1951년 10월 둘째 주일, 전쟁 중에 있는 조국과 동포를 위해 기도라도 드리자는 뜻으로 시작된 예배가 이 지역 최초의 한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는 100여 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31명이 첫 예배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믿음의 공동체는 미주 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인 이민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웨슬리홀 봉헌식도 가집니다. 웨슬리홀은 1983년 맥클린에 있는 대지를 구입했을 때 사용했던 작은 예배실입니다. 개인 주택을 개조해 예배실로 만들었던 웨슬리홀은 교회가 성장하면서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지은 지가 오래 되어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위험하여 재건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역적인 조건으로 인해 재건축이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지난 6년 동안 한 단계씩 차근히 준비하여 현대적 건물로 봉헌을 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홀의 재건축이 시작 될 수 있었던 것은 고 전병구 장로님의 교회 사랑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시무 하던 어느 날, 그분이 점심 식사나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하셨습니다. 약속한 장소에 나갔더니 저에게 노란 서류 봉투를 내미십니다. 그 봉투 안에는 유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유서에는 당신 재산의 절반을 교회에 바치고 나머지 절반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지정해 놓았습니다. 조지타운 의과대학교와 대학병원에서 봉직하신 장로님의 유산은 2백만 달러 조금 넘었습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그분이 하나님과 교회를 무척 사랑하셨는데, 그 헌금은 그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서류를 저에게 주시면서 장로님은 “아무 조건 없어요. 목사님이 교인들과 의논해서 꼭 필요한 일에 사용해 주시면 저는 그것으로 감사할 따름이에요. 빈 손으로 태어난 나에게 하나님이 이만큼 축복해 주셨으니, 이만큼 해야지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전에도 그분은 가끔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오셔서 “목사님이 어려운 사람들 많이 아실테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고 그분들을 도와 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 임원들과 의논하여 오랜 숙원이었던 웨슬리홀 재건축에 그 헌금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로 교우들이 재건축 헌금에 동참하여 3백 5십만 달러의 공사를 빚 없이 완료하게 되었습니다.
이민자로서 60년 넘게 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분은 세상 떠나시기 전에 예배 마치고 인사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좋아! 너무 좋아!” 하셨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이 많았기에 70년이 되어도 와싱톤한인교회는 청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와싱톤사귐의교회가 이어 받아야 할 고귀한 유산입니다. 그런 정신을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우리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 다해 감사하며 축복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앞으로의 역사가 이전의 역사보다 더욱 빛나게 인도하시기를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김영봉 목사(와싱톤사귐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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