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칼럼] 좋은 소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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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말에서 ‘말’은 입에서 나오는 ‘말’(言)과 타는 ‘말’(馬)의 뜻을 모두 담고 있어서 이 같은 재밌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말(言)은 발이 없어도 4개의 발을 가진 말(馬)보다 훨씬 빠르다. 요즘 같은 미디어 세상에서는 제트기나 로켓보다도 빠르다.
그런데 발 없는 말에도 속도 차이가 있다. 좋은 말은 걸어가고 나쁜 말은 뛰다 못해 날아간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루카스 교수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딸기 실험을 했다. 아이들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눈 후 싱싱한 딸기가 85%, 상한 딸기가 15% 정도 섞여있는 바구니를 주며 A그룹에는 싱싱한 딸기를, B그룹에는 상한 딸기를 골라내라고 각각 지시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똑같은 지시였다. 그런데 두 그룹의 결과물은 달랐다. A그룹의 아이들은 거의 정확하게 85%가량을 싱싱한 딸기로 분류했지만, B그룹의 아이들은 15%보다 훨씬 많은 50% 이상을 상한 딸기로 분류한 것이다.
이것을 ‘부정성 효과’(Negativity Effect)라고 부른다. 긍정적인 정보와 부정적인 정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전자보다 후자에 가중치를 적용하여 대상을 평가하는 심리 현상이다. 그래서 ‘싱싱한 딸기’라는 긍정적 표현보다 ‘상한 딸기’라는 부정적 표현을 들었던 아이들이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하여 실제보다 더 많은 딸기를 상한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에 더 집중한다. “김 씨가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네요”라는 소식보다 “김 씨가 사기를 당해서 망했다네요”라는 소식이 더욱 빠르게, 더욱 강력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쁜 소식이 귀에 잘 들어오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산다. 그중 나쁜 소식이 더 빨리, 더 많이 우리에게 전달되기에 우리의 삶이 더욱 버겁고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나쁜 소식에 낙망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나쁜 소식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과 얼굴은 어두워진다. 나쁜 소식이 끼치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좋은 소식을 듣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말씀을 ‘복음’, 즉 좋은 소식(Good News)이라고 표현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님은 질병과 생활고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오랜 마음의 상처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 억눌리고 핍박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리를 알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그렇기에 주님이 전하신 복음은 단순히 듣기에만 좋은 표면적인 의미의 좋은 소식이 아니다. 주님이 전파하신 좋은 소식은 생명을 살리는 소식이며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전하신 좋은 소식을 통해 생명을 얻고 새 삶을 찾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전할 소식도 그러한 의미의 좋은 소식이어야 한다. 무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주님은 칼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셨다. 좋은 소식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의미인 것이다.
2017년 10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위클리굿뉴스’가 창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으로 기뻤고,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언론으로서 좋은 소식을 전하기를 소망했다.
창간 4주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처음 품었던 ‘위클리굿뉴스’의 정신을 잃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이름 그대로 ‘굿뉴스’를 전하는 신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영훈 위임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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