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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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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2-06-15 | 조회조회수 : 5,9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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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미국의 주요 언론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에는 한국의 한 방송인의 죽음을 알리는 추모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국민 MC’로 잘 알려진 방송인 송해 씨였습니다. 신문은 송해 씨의 삶에는 지난 한 세기 한반도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으로 살았고, 한국 전쟁과 전후 복구,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대열로 들어선 장구한 역사의 한복판을 살았습니다. ‘경제 강국이 된 한국이 과거 형편이 어려운 농업국가로 시작하던 시절을 상기시켜 주는 원형적인 인물’이란 평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수요일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8년부터 34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진행을 맡아 최장수 방송 진행자로 그를 기네스북에 오르게 한 ‘전국노래자랑’은 방송인 송해 씨가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며 사회를 맡은 프로그램으로도 유명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지역 주민이 참여하여 노래 실력을 뽐내는 것이 기본적인 골격이지만 지역의 특산물도 소개하고 때로는 장기자랑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진행자와 출연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만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의 재미는 출연자의 노래가 끝날 때쯤 심사위원이 합격 불합격을 통보할 때입니다. ‘딩동댕동댕~’ 다섯 음계의 실로폰 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고 울릴 때면 참가자들은 합격의 기쁨을 누립니다. 


하지만 불합격을 알리는 ‘땡’ 소리가 들릴라치면 서운함과 민망함에 도망치듯 무대에서 내려갑니다. 어떤 출연자는 ‘땡’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한 노래를 끝까지 부르느라 진행자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그 또한 ‘전국노래자랑’만이 줄 수 있는 유쾌한 모습입니다. 


지금이야 합격과 불합격이 눈앞에서 가려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지만, ‘전국노래자랑’이 방영을 시작했던 1980년대 초만 해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땡’을 당하는 것은 사회적 망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한 신문에서는 사람 불러 놓고 공개적으로 기분 나쁘게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비아냥대면서 불합격을 알리는 실로폰 소리를 ‘불쾌한 불합격 “땡” 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는 심사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한 작곡가는 방송 초기에는 음정, 박자가 조금만 틀려도 칼같이 땡을 울렸는데, 나이가 들면서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예전만큼 땡을 많이 주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땡’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땡’ 하는 기술은 한창 절정에 있을 때는 ‘땡’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 ‘땡’ 하면 상처받아요.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막걸리 한잔하고 해지고 들어갔다는 사람도 있어요. 노인한테 야박하게 땡 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고, 땡 받은 아이가 서럽게 울어 녹화장이 엉망진창이 되기도 해요.”


‘땡’ 소리에 상처받은 사람의 상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사회자인 송해 씨의 몫이었습니다. 민망해하는 출연자의 손을 잡아주고, 너무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못 한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도 하고, 박자를 못 맞추는 사람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박자를 잡아주던 그는 출연자들의 마음을 풀어주던 ‘딩동댕 할아버지’였습니다. 


송해 씨는 무대에 오른 아이들에게도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설을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출연한 어린이들에게 세뱃돈을 건넸고, 교복을 입고 나온 학생들에게는 책값을 쥐여주며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나이 든 출연자에게는 재롱을 떨어 마음을 풀어 주기도 했고, 지역 특산 음식물을 즉석에서 맛보면서 보는 이의 입맛을 다시게도 했습니다. 


품 넓은 진행자로 인해 ‘전국노래자랑’은 모두가 마음껏 춤추고, 신나게 노래하고, 흥겹게 노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또, 송해 씨와 함께했던 출연자들은 합격 불합격과 관계없이 모두가 다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런 푸근함이 있었기에 그를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에는 그리움이 더합니다. 


한 방송인의 죽음을 기억하는데,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은 가차 없이 평가합니다. ‘땡’ 소리와 함께 실패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는 분이시고, 절망 대신에 용기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딩동댕동댕’ 소리와 함께 우리 주님의 위로와 평안함이 가득한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창민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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