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작은 일상의 사역이 기적이 되어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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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병원 식당의 주방 관리자로 새롭게 입사한 에이미라는 직원이 원목실을 찾아왔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간절함과 감사가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실 그녀는 두 달 전 코로나에 걸려 이 병원에 입원했었고, 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생사의 기로에 처했었다고 합니다. 입원 둘째 날, 정신을 잃어가는 딸을 보며 어머니가 눈물로 간호하고 있을 때 한 원목이 예고 없이 병실을 찾아왔습니다. 원목은 절망에 빠진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했고, 사경을 헤매던 에이미의 손을 붙잡고 로마서 8장의 말씀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을 읽어주며 간절히 기도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몇 번이나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깊이 와닿았는지, 그때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 "꼭 살아야겠다"는 소망과 병마를 이겨낼 힘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그 원목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자 원목’이었다는 희미한 기억만으로 감사를 전하기 위해 원목실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건강을 회복해 병원 직원으로 다시 서게 된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처럼 느껴진다며 그녀는 연신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는 병원 차트 시스템을 열어 그녀의 기록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4월 7일, 그녀의 차트에는 단 한 번의 원목 방문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 기록을 남겼는지 확인하는 순간, 저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그 원목은… 바로 저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는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차트를 꼼꼼히 살펴보니 그저 평범한 방문 기록이 적혀 있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환자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신앙을 확인한 뒤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치유와 내적 힘을 위해 기도했다는, 제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일상적인 사역의 기록이었습니다. 아마 15분 남짓의, 수없이 반복되는 평범한 심방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짧은 만남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소망을 붙드는 구명줄이 되었고, 다시 일어설 능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기억조차 못 하는 일상적인 사역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었으며 광야에서 얻은 생명의 만나와 같았다는 사실을 저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제가 그때 그 원목이라는 사실을 알고 저를 꼭 안아주며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원목 사역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며 하나님께 감사했고, 앞으로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달라고 거듭 부탁했습니다. 병원 식당에 오면 다른 사람들보다 맛있는 음식을 훨씬 더 듬뿍 담아주겠다는 농담 섞인 고마운 약속도 잊지 않았습니다.
호스피스 원목이자 작가인 케리 이건(Kerry Egan)은 그녀의 저서 『On Living』에서 원목 사역을 ‘일상적인 사역의 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매일 같은 자리를 돌고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처럼 경이로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저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의 빛줄기가 스며든, 참으로 눈부신 순간이었습니다.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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