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체휼(體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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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저 코로나 걸렸어요. 기도해 주세요.” 작년만 해도 이런 기도 부탁을 그다지 많이 받지 않았는데, 올해 들어 하루 걸러 이 기도 요청을 계속 받게 됩니다. 그만큼 많은 분이 코로나로 고생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성도님들이 저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연락이 오고, 본인의 기도 부탁을 하는 성도님들이 오히려 자기와 한 배를 탔다고 더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하십니다. 동병상련이랄까요? 당연히 목사로서 기도 부탁한 성도님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드리지만, 저도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 속에 있으면서 기도하게 되니, 더욱 간절해집니다.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자는 아픈 사람이고, 곤경에 처한 자를 위로할 수 있는 자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입니다. 남보다 더 가진 것이 은사라면, 아픔과 어려움도 남보다 더 겪었으면 비슷한 형편의 사람을 돕도록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신학교 시절, 차가 없어서 선배에게 라이드를 받아 학교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위로가 되었던 동기생이 있었는데 차가 없어서 학교를 걸어 다니던 전도사였습니다. 차를 몰고 학교 가던 분들이 아무리 빵빵거리며 타라고 손짓해도 사양하면서 유유히 로마서 전체를 암송하며 걸어 다녔던 동기였습니다. 그때 한 후배가 한국에서 유학을 오자마자 새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1980년대, 신학생이 새 차를 탄다는 사실에 ‘아멘’ 할 수 없었던 당시, 그 후배가 나에게 다가와, "선배님, 힘드시죠?"라고 하는데 전혀 위로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던 차 없는 동기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걸어 다니는 것이 낭만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훗날 그 동기생의 걷는 모습에 반한 한 공대 출신 자매가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학교 등록금도 도와주고, 결국 결혼하여 사모로서 동기생의 목회를 빵빵하게 후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로마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셨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감동을 주었을까 싶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아픔을 하소연 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empaꠓthize)’하신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히 4:15 개역 한글). 개역 개정에서는 이 단어를 ‘동정’으로 번역했는데 못내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헬라어 원문은 동정(sympathy)이 나온 뿌리지만, 의미는 체휼이 훨씬 더 깊기 때문입니다.
동정의 의미가 자기보다 가여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면, 체휼은 같은 일을 겪어봤기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픔을 체휼하신 주님이시기에 내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듯이, 코로나 걸린 성도들을 위해 겪어봤기에 드릴 수 있는 체휼의 기도로 더욱 무릎 꿇겠습니다.
김한요 목사(베델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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