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꽃병에 담긴 30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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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집을 찾아오는 고객들 중에는 항상 같은 꽃병을 들고 찾아와 그 꽃병에다 꽃을 장식을 해달라고 주문하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이나 이름보다도 그 꽃병을 더 잘 기억하는데 그들이 들고 오는 꽃병이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중에도 에드 웰치씨는 아주 특별한 분인데 그는 우리가 가게를 시작한 이후 매년 한 번씩 벌써 세 번이나 같은 꽃병을 들고 찾아와 결혼기념일 꽃을 해갔습니다.
약 3주 전 그가 다시 꽃병을 들고 왔을 때 난 그것이 그의 세 번째 방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게 꽃병을 건네주며 하는 말이 이 꽃집이 생기면서부터 지금까지 약 30여 년을 여기서 매년마다 이 꽃병에 꽃을 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우리 이전의 주인들까지 5대에 걸친 주인들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우리보다 훨씬 더 이 꽃가게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주인들은 다섯 번이나 바뀌었어도 고객인 그는 바뀌지 않았고, 주인들은 얼마간 있다가 떠났어도 그는 떠나지 않고 이 가게를 찾아오고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들고 오는 키가 작은 꽃병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작고 특이하게 생긴 것인데 그 꽃병의 의미를 알고 있는 아내는 최선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 그 꽃병에다 꽃을 디자인해줍니다. 문제는 배달인데, 만일 그 꽃병을 들고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혹시 깨져도 내 코가 깨져야지 병이 깨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꽃병이 깨지는 순간 그 가정에서 오랜 세월 내려오고 있는 수십 년의 전통도 함께 깨지는 것이요. 30여 년간 그가 아내에게 똑같은 꽃병에 담아 바치던 그 사랑의 이야기도 계속될 수 없을 것이며, 어쩌면 그 꽃병을 자녀에게 물려주어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그 가정의 아름다운 유산도 깨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비장한 각오로 그 병을 조심조심 들고서 배달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아내는 그가 그 꽃병을 들고 와서 결혼기념일 꽃을 주문할 때마다, "참 기가 막힌 남편이네"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하는데 날 들으라고 일부러 하는 말은 아닌 듯하지만 그 말이 내게는 "당신은 기가 안 막힌 남편이야, 당신은 저렇게 해본 적이 있어? 당신도 저런 남편을 한 번 닮아봐" 등등의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이제라도 좋은 남편이 되려고 애쓰는 나를 정죄감 속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 결혼기념일 꽃을 처음 받았을 때는 아주 젊었을 웰치 여사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활짝 웃으면서 그 꽃병을 받는 것을 보며 아내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감사를 그 꽃병에 담아 3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꾸준하게 바치고 있는 웰치씨에게 나는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 세상에 꾸준함보다 큰 능력은 없습니다. 동굴 속 바위에 난 구멍은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가 뚫어놓은 것이 아니라 수백년간 꾸준히 그곳을 향해 떨어진 한 방울 한 방울의 물방울이 뚫어놓은 것입니다.
내가 지난날 조금이라도 성취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꾸준히 했던 것이요, 실패한 것들은 모두 중도에 포기했던 것들입니다. 그날들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능력과 자질의 부족이나, 상황이 불리했던 것이나, 돕는 이가 없었다거나, 운이나 때를 잘못 탔다거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 꾸준하지 못했다는 것 단 한 가지뿐입니다. 만일 결심했던 그때부터라도 꾸준히 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몸짱이 됐을 것이요, 스패니쉬도 유창하게 했을 것이고, 두 손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어떤 95세의 노인처럼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하고 있는 좋은 일들, 좋은 습관들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것입니다. 내 년이면 또다시 그 꽃병을 들고 찾아올 웰치씨는 내게 꾸준함의 위대함을 가르쳐준 훌륭한 스승입니다.
웰치씨가 30여년 꾸준히 변치않고 가져온 꽃병에다 아내는 앞쪽 가운데에 핑크빛 피오니와 그 좌우에는 그린색 심버디엄올켓과 수국을, 그리고 오른편 중간과 뒤쪽으로 핑크 색과 노란색 장미, 중간 왼쪽으로 핑크 색 아시아틱릴리와 중간 오른편 끝쪽으로 고품격의 리지앤터스, 그리고 앞쪽 양옆으로 레더리프와 뒤쪽에 하얀 팁의 그린 색 핏츠를 끼워 넣음으로 디자인을 완성했습니다.
꽃병이 특이한 만큼 디자인도 까다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30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꽃병입니다. 이번에 이 모습을 사진에 담아놓지 않으면 혹시나 기회를 영영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달을 나가기 전 살짝 사진을 찍어놓았습니다. 요즘 아마추어인 내가 가끔 사진을 올려도 아무 말도 듣지 않는 것은 아내가 잔소리를 하다가 지친 건지, 아니면 내 사진기술이 좀 발전을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꾸준함의 위대함을 이 꽃병은 소리 없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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