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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목사의 칼럼(2)] 강단 아래에서 올려다본 하늘, 그리고 나의 새로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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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6-12 | 조회조회수 : 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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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목사의 자리는 늘 강단이었다. 그곳은 치열한 영적 전쟁터이자 거룩한 부담의 자리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적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굽이치는 인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해 주는 삶. 그것이 내가 아는 목회의 전부였고, 내 삶의 유일한 목적지였다.


그러나 은퇴를 하고 나니 내 자리가 바뀌었다. 이제 나의 자리는 강단 위가 아니라, 강단 밑에 성도들과 나란히 앉은 의자 위다. 처음에는 이 자리가 참으로 어색했다. 말씀을 전하는 자에서 말씀을 듣는 자로의 전환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낯설었다.


물론 은퇴를 했다고 해서 목사가 하루아침에 완전한 평신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양 떼를 향한 목자의 심정이 맥박처럼 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강단에 선 후배 목회자의 설교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교만함이다. 지금 은퇴한 목사의 자리는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평신도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을 듣는 사람',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성도'여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새로운 영적 훈련이다.


교회 밖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은퇴 목사의 일상은 때론 어린아이 같고 미숙하기 짝이 없다. 평생을 성경과 교회, 성도들 속에서만 살다 보니, 세상의 계산법이나 복잡한 일처리에 둔감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때도 많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나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박한 노인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세상의 일에는 서툴지라도, 내 가슴속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단단한 소망 하나가 있다. 바로 '영력(靈力) 있는 목사'로 남고 싶다는 것이다.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되,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세속 한가운데서 든든한 영적인 기둥으로 서고 싶다.


이제 내 손에 쥐어진 목회의 지팡이는 없다. 치리권도, 결정권도 내려놓았다. 그러나 지팡이가 없다고 해서 길을 안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뒷모습으로, 나의 소박한 일상으로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영안(靈眼)이 맑게 열려 있어야 한다. 영력이 있어야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 말씀을 듣고 다시 일어서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은퇴는 사역의 마침표일 뿐, 영적 성장의 마침표가 아니다.


이 낯설고도 은혜로운 새로운 자리에서, 나는 다윗의 고백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편 103:1-2)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였고, 앞으로 걸어갈 길 또한 은혜일 것이다. 여전히 서툴고, 때로는 강단 아래의 자리가 수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는 오늘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은퇴 목사의 새로운 영혼의 지도를 그려 나간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강단은 아니지만, 삶이라는 더 넓고 깊은 성소에서 묵묵히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 이것이 강단 아래로 내려온 은퇴 목사에게 허락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일 것이다.


이종천 목사(참좋은 감리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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