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꽃 이야기] 백합(Lily) 활짝 펴서 아름답고, 피지 않아서 또한 아름다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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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백합이 피는 계절입니다. 하얀 백합꽃이 활짝 핀 모습이 마치 봄이면 찾아오는 부활절과 잘 어우러져 백합은 부활절의 상징적인 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백합꽃에서 뿜어나오는 강렬한 향기와 꽃가루로 인한 알러지 때문에 백합은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모든 꽃들중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거부를 당하는 꽃입니다. 그래서 성전 안이나 노인센터 현관, 수많은 이벤트장소 등에 나열해놓으면 너무도 멋질 백합이 그 가치만큼 충분히 쓰임을 받지못하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백합은 모든 꽃들 중 유일하게 핀 것과 피지 않은 것이 함께 쓰임받는 꽃입니다. 우리는 백합이란 이름을 들으면 즉시로 하얗게 활짝 핀 별 모양의 꽃을 연상하지만 백합의 ‘백’은 ‘흰 백’자가 아닌 ‘일백 백’자입니다. 흰 백 자면 안 되는 것이 백합은 그 종류만이 아니라 색깔도 다양해서 흰색, 노란색, 오렌지색, 핑크색, 호랑이 가죽을 닮은 타이거릴리, 안쪽은 별 모양의 핑크 끝부분은 흰색이 아름답게 조화된 스타게이져릴리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백합꽃이 있기때문입니다.
백합의 모양도 자세히 보면 매우 특이하게 생겼는데 줄기 하나가 위로 올라오면서 둘로 갈라지고, 어떤 것은 갈라진 그대로 꽃망울을 맺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그 갈라진 데서 다시 한 번 더 갈라져 꽃망울을 맺음으로 해서 백합 한 줄기에서 세 개 내지 네 개의 꽃망울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서너 개의 꽃망울은(제가 관측한 바로는) 동시에 다 활짝 피지 않고, 한 개가 먼저 피고 나머지는 하나씩 차례로 피어납니다.
화분에 심어 키우는 백합은 꽃망울 전체를 다 피도록 하지만 꽃병에 디자인하는 백합은 전체를 다 피지 않고 그중 하나 혹은 둘만을 피고 나머지 한두 개는 피지 않도록 다문 채 쿨러에 넣어 보관하다가 그 다문 모양 그대로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활짝 핀 백합꽃도 아름답지만 피지 않은 백합의 꽃망울은 보면 볼수록 미래를 품은 그 모습이 묘하게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그 피지 않은 꽃망울이 전체 디자인에서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활짝 핀 백합꽃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아주 특이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 피지 않은 백합 꽃망울에 담긴 비밀이 어느 날 내게 잔잔한 감동으로 찾아왔습니다. 활짝 핀 인생이 사람들에게는 멋지게 보일는지 모르지만 한 번도 제대로 피어 보지 못한 인생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생긴 배우나 탤런트도 아니고, 성공한 사업가나 돈 많은 재력가도 아니며, 탁월한 지도력으로 큰 단체를 이끈 지도자도 아닌 사람, 어떤 이들은 몇 권, 몇 십 권이나 쓰는 책을 단 한 권도 써보지 못하고, 심지어 군중들 앞에서 멋지게 노래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 그러나 그렇게 피지 않고 다문 채로 조용히 살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습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도, 나라를 위기에서 건진 이순신 장군도 존경스럽지만, 나에게 피부에 닿고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나도록 감동적이며 존경스러운 분은 그 삶 전체를 나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어머니입니다. 그야말로 인생 한 번 활짝 피어보지 못한 채 오직 자녀들을 위해 일생을 살다가 굳게 다문채로 가셨지만, 그 희생으로 살아난 우리 남매들에게 그 삶은 비할 데 없이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해 평생을 가족 같은 단 몇 명의 교인들만을 섬긴 어느 신실한 목사님을 보면서 그 다문 채로 살아온 삶,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욱 겸손하고 성숙한 그분의 인격이 가슴에 와닿으며 피지 않고 다물었으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충실히 감당하는 삶을 나는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활짝 펴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활짝 피었기 때문에 빨리 시들고 져버린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은하고 그윽하게 다문 채로 오랜 세월을 견디고 인내하며 감동을 주는 그런 삶이 내겐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활짝 핀 백합만이 눈에 들어 오더니 이제는 피지 않고 다문 꽃망울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꽃을 보는 안목도, 인생을 보는 안목도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장례식에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는 ‘sweet notion'이라는 디자인은 하얀색 수국과 흰 장미, 하얀 애스트로메리아와 활짝 핀 백합 그리고 뒤쪽으로 아직 피지 않은 백합꽃망울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활짝 핀 꽃들이 아무리 예뻐도 만일 여기에 피지 않은 채 꼭 다문 백합꽃망울이 없었다면 결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조화를 이룬 디자인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빨간 장미와 흰 수국 여러 가지 그린들과 뒤에는 토끼풀까지 끼워 넣은 이 디자인의 가장 백미는 약간 열린 것과 피지 않은 채 다물고 있는 스타게이져릴리입니다. 백합이 피어서만이 아니라 피지 않아서도 아름다운 것처럼 피지 않고 다물어서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삶이 있습니다.
이근호(다니엘) 목사는 1977년에 도미, George Mason 대학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Central Bible College와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교학 전공했으며, 198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이민 목회와 함께 지난 25년간 미국 전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했고, Billy Graham의 LA Rose Ball 전도집회에서 통역 설교를 담당했다. 2017년 목회직을 사임한 후 2018년 2월부터 버지니아에서 Lake Ridge Florist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물이 흐르는 곳에 식물은 자란다"(베드로서원),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감동 있는 삶"(쿰란출판사), 다니엘 꽃이 야기(Daniel's Flower Story)"(도서출판 레드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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