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목사의 목양칼럼] 오랜만에 처조카들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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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는 고등학교 학생 때 만난, 고향이 경기도 이천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하던 날 담임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수원 도립병원을 방문하고서, 중한 병명을 진단받고 길고도 험한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놀란 것은 필자만 아니라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병상을 찾아와 위로하고 손발이 되어주며 돌봐주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여자 친구의 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뒤를 따라다니며 필자와의 만남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필자가 보는 앞에서 여자 친구는 머리채도 잡혀 끌려가기도 했었습니다.
한 번은 우리 집으로 쳐들어와 우리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우산대로 사정없이 내려치시며 죽어가는 놈을 왜 따라다니느냐며 폭행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언니로서 당연히 해야 하고 막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친구는 그럴수록 더 언니에게 반항하면서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미국 선교본부의 도움으로 치료차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완치 진단을 받은 후 1975년 초 UCLA Medical School 혈액 내과 과장 Dr. Nicolas Costea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한국에 여자 친구가 있는데 이곳에 와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최초의 흑인 시장이셨던 탐 브래들리 Los Angeles 시장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장님이 당시 주한 미 하비브 대사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주셨습니다. 그 편지를 대사관으로 보내겠다는 것을 직접 달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대사관으로 보내면 필자가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미국도 빽이 통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자 친구는 그 편지로 여권과 비자를 받고 미국에 와서 필자와 부부의 인연을 맺고 42년간 함께 살아 두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첫 딸의 50살 생일이 10여 일 전 지났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9년 전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사람을 보내고 나서, 이번 한국 방문 중에 두 번째로 처가 가족들과 만나는 모임을 가졌습니다. 짧은 일정 중 토요일인 24일 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을 달려서 이천에 도착했습니다. 4명의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나기 전에 이날 식사비는 내가 내겠다고 먼저 약속을 받았습니다. 말로는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필자보다 나이가 어린 조카들이 강력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오셨다고 봉투를 하나씩 준비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뿌리쳐도 그들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온 가족임에도 피를 나눈 가족의 소중함과 따스함을 강하게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2026년 10월 24일
이상기 목사(평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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