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목사의 목양칼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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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20일 밤 도착해서 머무는 여동생의 집 수원에서 이른 아침 약속된 장소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아름다운동행 신문사로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방문해서 세분의 기자분들에게 한 주 후 발행되는 신문에 올라갈 필자의 지나온 삶에 관한 특집 기사를 올리기 위해서 집중적인 인터뷰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인터뷰를 해 보았지만, 이번처럼 오랜 시간 집중적인 질문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올라갈 때는 여동생이 수고를 해 주었고 인터뷰를 마치고 수원으로 돌아올 때는 한 시간 이상 운전을 해서 아름다운동행 설립자 박에스더 사장님이 수원 집 앞에 내려주고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이번에 고국을 방문한 이유는 8년 전 ‘아름다운동행’에서 출판한 “야곱의 고백”이라는 필자의 자서전을 Audio Book과 E-Book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달여 전에 아름다운동행이 출판한 많은 책 가운데 필자의 책을 첫 사업으로 Audio Book과 E-Book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일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이라도 내가 경험한 것처럼 사망의 골짜기에 빠진 사람이 주님을 만나 살 수 있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쁘게 허락하고 고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놀란 것은 필자가 무엇이기에 ‘아름다운동행’ 신문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노래 가운데 ‘TV 속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네’라는 가사처럼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력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언론의 도움을 끌어내거나 마음먹은 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력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으며 가진 것도 넉넉지 못한 무명의 은퇴 목사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불러내 세상 밖으로 끌어내시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으로 치료되지 않는 병을 위해서 53년 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필자의 병명은 영어로는 Aplastic Anemia, 한국명으로는 재생불량성 빈혈이었습니다. 몸 안에 피를 만드는 기관이 폐쇄되어 생명 유지를 위해선 반복 수혈을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당시 국내 병원 의료진들이 한 말은 1972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죽음의 골짜기에서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필자의 치료를 맡으셨던 분은 UCLA 의과대학의 혈액학 과장이셨던 Dr. Nicolas Costea셨습니다. 어느 날 진료실에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Mr. Lee 왜 네가 나았는지 모른다. 병을 위해서 병원이 한 일이 없으며 어느 약도 사용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하신 대로 지난 52여 년 동안 수혈받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서 작은 목자로 42년 동안 한교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은퇴한 지 3년 10개월이 되었습니다. 두 딸과 아들을 주셨습니다. 손자녀는 6명입니다. 대학생이 4명이고 고등학생이 2명입니다. 6개월이 지나면 두 명의 손녀가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저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미국 이민 4대를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사망에서 구하셔서 종으로 축복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26년 10월 23일
이상기 목사 (평강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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